보라색 하늘 아래서

by 김준완


보라색 하늘.
엉킨 가시덩굴을 걷어내면
당연히 봄이 오고,
기어이 꽃은 피는 것이라 믿는 당신에게
나는 멍든 보라색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

당신이 인과의 화단 앞에 서서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의 밝기를 가늠하는 동안,
나는 안쪽에서 터져 나온 비명으로
헐거워진 성벽을 본다.

꽃은 축복처럼 피어나는 게 아니다.
꾹 참았던 실핏줄이 터져 번져나간
통증의 무늬일 뿐.

우리가 외면하며 버린 어제들이
진 꽃잎처럼 발치에 쌓일 때,
차마 섞이지 못한 날 선 감정들은
강물이 되어 흐르고,
푸른 새 대신 검은 나비들이 쏟아지는 정오.

차라리 봄은 오지 않아도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린 채
거대한 멍 자국을 그저 어둠이라 오해하고 있으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
가장 정중한 예의로 슬픔을 접어 서랍에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는 보라색 하늘 아래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나란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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