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너는 스스로 수직의 고독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
몸에 기하학적인 갈색 무늬를 두르고
누구의 침범도 허락지 않는 성벽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멀어지면 너는
먼 공중에서부터 그 긴 고집을 꺾어 내려오고
내가 한 뼘 다가가면
검은 혀로 내 온기를 밀어내며
다시 아득한 침묵의 고도(高度)로 돌아가 안도한다
나 역시 나를 지키기 위해
너라는 중력을 잊으려 한 시절이 있었다
수 미터의 목을 타고 피를 밀어 올리는
저 팽팽한 박동을 견디는 일이 버거워
네 곁에 있어도 삶은 늘 희박했고, 부재는 끝없는 추락이었다
이제 나는 나의 지상을 버리려 한다
네 발밑에 고인 짙은 그림자가 되어
네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나의 소멸이 발등에 닿기를
그 커다란 눈망울에
더 이상 내가 비치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딛고 선 밤이 온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제 눈보라 속으로 길게 목을 빼고
한 장의 흰 여백으로 흩어져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