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빨간 플라스틱의 매끄러운 숨통을 그었다
무딘 칼날이 지나간 자리,
흥부의 박 대신 쏟아지는 건
곰팡이 핀 구리 냄새와 녹슨 시간의 파편들
바닥을 구르는 짤랑거리는 비명들을 세며
내 손가락은 숙련된 계수기처럼 마모되어 간다
동전의 톱니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지문은 깎여 나가고, 대신 흉터 같은 숫자가 돋는다
나는 내가 설계한 이 도살장에서
나라는 가축의 눈망울을 가장 먼저 추려낸다
손바닥에 고인 금속의 냉기를 털어내며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의 고요한 미소를 빌었다
성경의 절망보다 더 팽팽하게 다려진 안식
구원은 이제 인쇄된 종이의 질감으로만 만져지고
구멍 난 신앙은 동전의 앞뒷면 사이로 증발하는데
배가 갈린 돼지는
제 안의 장기(臟器)를 다 쏟아낸 채 하릴없다
나는 씻기지 않는 가난의 냄새를 묻힌 채
마지막 남은 혀를 잘라 돼지의 빈 배에 넣는다
장례가 끝난 방,
숫자들만 지독하게 번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