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관점주의로 읽은 나의 시 농담

essay

by 김준완


먼저 내가 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고통보다 미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긴 머리로 얼굴을 늦추고
짧은 바지로
시간을 앞지른다
해바라기는
방향을
대신 맡는다


내가 이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농담은 웃음이 아니다.
결정하지 않기 위한 태도이며,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기 위해 취하는 일종의 자세다.

나는 사람들이 고통보다도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상태를 더 견디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웃음으로 시간을 벌고 말로 상황을 미루는 모습을 농담이라는 단어로 묶어보고 싶었다.

이 시에서 농담은 유머가 아니라, 삶을 잠시 보류하는 기술에 가깝다.
이 시를 거미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거미에게 세계는 언제나 추락 직전이다.

그래서 거미는 농담 대신 실을 친다.

웃어서 상황을 피하지 않고, 구조를 만들어 상황을 견딘다.

거미의 눈으로 보면 내가 말한 농담은 불안을 구조로 만들지 못하는 존재가 선택하는 우회로다.

거미에게 삶은 회피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반대로 기린의 입장에서 읽으면 또 다르다.
기린은 세계를 멀리서 본다.

미지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직 닿지 않은 잎사귀일 뿐이다.

기린에게 농담은 회피도 방어도 아니다. 굳이 필요 없는 장치다.

높이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불안은 저절로 작아진다.

기린에게 세계는 숨길 것이 아니라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읽기가 가능한 이유를 나는 니체식으로 설명해보고 싶었다.
니체의 관점주의란, 세계에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진리는 대상 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각자의 신체 조건, 감정, 기억, 공포, 욕망을 통과한 세계만을 경험한다.
같은 사과를 보더라도
배고픈 사람에게 사과는 음식이고,
화가에게 사과는 색이며,
농부에게 사과는 수확량이다.
사과는 하나지만, 세계는 다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객관성이란 중립적인 시선이 아니라, 수많은 관점이 겹쳐질 때 생기는 일종의 착시에 가깝다.

한 개의 완전한 진리는 없고, 대신 끝없이 충돌하는 해석들만 있다.

그래서 니체에게 철학자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발명하는 사람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가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내가 쓴 「농담」 역시 보편적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몸, 인간이라는 시선, 인간이라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을 웃음으로 처리하는 종(種)이고,
거미는 불안을 구조로 처리하는 종(種)이며,
기린은 불안을 거리로 처리하는 종(種)이다.


결국 이 시는 진실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계가 이렇게 보였다는 하나의 기록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농담」은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이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는 텍스트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