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아침 인사 〉
"거북아, 안녕? 저기 풀숲에 사는 달팽이가 너한테 줄 선물을 보냈어.
네가 청경채를 정말 좋아한다고 들었대.
자기는 걸음이 조금 느려서 내가 대신 배달 왔어.
달팽이의 따뜻한 마음이니까 맛있게 먹어줘."
미르차 엘리아데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는 동일한 현상이라도 최소한 다섯 가지 정도 이상의 범주들로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하나의 사건은 그저 눈앞에 일어난 물리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신화적이고 역사적인 층위, 그리고 심리적, 실존적, 정치적 층위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쓴 〈 아침 인사 〉 속 거북이와 달팽이의 만남을 이 다층적인 범주 안에서 다시 바라본다면, 이건 단순한 안부를 넘어선 아주 특별한 철학적 사건이 됩니다.
1. 니체 : 내 운명을 사랑하는 초인의 유희
제 시 속에서 달팽이가 보여주는 느린 걸음은 삶의 장애물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느림 덕분에 청경채라는 선물이 더 빛이 나죠. 니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달팽이는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긍정하는 아모르파티의 주인공입니다. "자기는 걸음이 조금 느려서 내가 대신 왔다"는 그 고백, 그건 약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유머와 배려로 승화시킨 초인의 여유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이 인사는 무거운 삶의 하중을 즐거운 유희로 바꾸는 창조적인 몸짓인 셈이죠.
2. 칼 슈미트 : 풀숲에서 선언된 다정한 우정
칼 슈미트의 렌즈로 이 장면을 보면 어떨까요. 아마 공간을 나누고 질서를 세우는 결단으로 읽힐 거예요. 엘리아데가 공간의 신성함을 말했듯이, 저도 풀숲이라는 거친 야생 속에서 두 존재가 맺는 관계에 집중해 봤어요. 달팽이가 배달원을 통해 선물을 보낸 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우리가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주권적 선언입니다. "맛있게 먹어줘"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너와 나를 동지로 규정하고 우리만의 평화로운 영토를 만들겠다는 단호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3. 프로이트 :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난 승화
프로이트라면 이 시의 언어 밑바닥에 숨겨진 마음의 움직임을 찾아냈을 거예요. 엘리아데가 말한 상징적 층위에서 보면, 청경채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달팽이가 거북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의 투사라고 볼 수 있죠. 직접 가지 못하고 누군가를 대신 보낸 설정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빚어낸 아주 세련된 승화의 결과물입니다. 타인과 이어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다정함이라는 형식으로 멋지게 치유해 낸 것이죠.
맺음말
결국 이 아침 인사는 엘리아데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채소를 전달하는 평범한 일에 그치지 않아요. 그 안에는 니체식의 생의 찬가가 있고, 슈미트식의 평화로운 결단이 있으며, 프로이트식의 내면적 치유가 담긴 성스러운 의례가 숨 쉬고 있습니다. 거북이가 청경채를 아삭하게 베어 무는 그 순간, 제가 만든 이 풀숲은 더 이상 흔한 장소가 아니게 돼요. 우주의 원초적인 다정함이 회복되는 신화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