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뼈와 아름다운 찬송가

essay

by 김준완


​들풀의 눈을 피해 웅덩이에서 건져 올린
훔친 오리알을 아물지 않은 배꼽 사이에 숨겨 두었다
그곳은 내가 세상과 작별하지 못한 유일한 파구(破口)
덜 닫힌 살문 사이로 알의 미지근한 점액이 스며들었다


​알 속의 것들은 내 몸의 지도를 금세 파악했다
핏줄을 타고 내려가 무너진 무릎과
누군가 던진 말에 부서져 떠돌던 가슴뼈 조각들을
둥글고 납작한 주둥이로 진흙처럼 짓이겨 붙였다


​날마다 내 안의 폐허를 수소문하던 그것은
맞춰지지 않는 뼈의 절단면마다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찬송가를 불러 주었다
뒤틀린 내장벽마다 축축한 화음이 이끼처럼 돋아났다


​금이 간 뼈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단단해질 때쯤
배꼽 주변으로 짓무른 깃털들이 끈적하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훔친 것을 돌려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부화한 가장 거룩한 짐승과 함께
검은 물이 고인 웅덩이 속으로 스스로 침몰한다


​부화가 끝난 배꼽 속은 텅 비어 차갑고
내 몸 어디에도 오리는 없는데, 뼈들은 자꾸만 찬송가 소리를 낸다.


​[에세이] 진실의 뼈와 아름다움의 찬송가


​삶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바라볼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종교적인 층위의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잠시 그 신성(神性)의 외피를 벗겨내고 본질을 응시해 본다면, 인간의 삶은 결국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향한 끊임없는 지향성으로 요약됩니다. 문학은 바로 그 지향의 가장 정직한 기록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뉴턴 역학이 운동과 힘을 논하기 전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글쓰기의 x축과 y축은 바로 ‘진실’과 ‘아름다움’입니다. 이 좌표축이 설정되지 않은 문장은 결코 글이 될 수 없습니다.


​시 **<노란 흉터>**는 바로 이 좌표 위에서 탄생한 사건입니다. '들풀의 눈을 피해' 웅덩이에서 건져 올린 오리알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불온한 생명력이자, 상처 입은 내면으로의 침입입니다. 내 몸속에 박힌 ‘아픈 뼛조각’은 부정할 수 없는 고독이자 생의 진실(x축)입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진실을 찾아내어 어루만지는 오리의 ‘찬송가’는 문학이 도달해야 할 지고의 아름다움(y축)입니다. 진실이 통증으로 남지 않고 노래가 될 때, 비로소 글은 형식을 갖추고 생명력을 얻습니다.


​모든 글에 고독이 깃드는 것은 고독이 인간의 가장 투명한 진실이기 때문이며, 그 안에서 우리가 기어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뼛조각이 찬송가를 부르는 그 기이하고도 거룩한 접점에서, 나는 무엇을 빼먹지 않고 말해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그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만 비로소 '글'은 부화합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