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굴에는 구원이 없다

essay

by 김준완


​굴 속에서 코를 후비는 카프카.


​그의 정교한 텍스트 어디에도 이런 천박한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법 앞에 얼어붙거나, 벌레가 되어 천장을 기어 다니거나, 혹은 정체 모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아하게’ 고뇌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간에서 끊임없이 코를 후비고 있었을 한 남자의 비루한 손가락을 본다. 이것은 문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카프카라는 거대한 신화가 덧씌운 ‘고결한 고독’을 해체하려는 나의 냉소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흔히 그의 굴을 외부 세계의 폭력에 맞선 예술적 성채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 성채의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것이 고작 콧구멍 속의 가려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카프카의 모든 문장은 무너져 내린다. 코를 후비는 행위는 지극히 사적이며 생리적이다. 그것은 실존적 공포나 형이상학적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거창한 가치들을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려 놓는 부조리의 극치다.


​삶은 머리로는 알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카프카는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고 방어하기 위해 미로 같은 문장을 쌓았지만, 정작 그의 손가락은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가려움을 쫓아 콧구멍 깊숙한 곳을 탐색한다. 완벽하게 설계된 지성적 요새 안에서 벌어지는 이 비천한 행위야말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가장 정직한 모순이다.


​이 전복적인 시각은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운명까지 확장된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존재론적 고독이 아니라 등 뒤에 박힌 사과가 썩어가는 가려움이었고, 『심판』의 요제프 K를 무너뜨린 것은 법의 위엄이 아니라 법정의 탁한 공기가 주는 피로감이었다. 굴 속에서의 코 후비기는 바로 이러한 육체적 비참함의 결정체다.


​손가락 끝에 걸린 작은 딱지 한 조각은 그가 평생을 바쳐 쓴 원고 뭉치보다 더 생생한 ‘현존’의 증거다. 문장은 타인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지만, 굴 속에서 홀로 코를 후비는 행위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 무의미의 완결이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한 요새를 꿈꿨으나, 결국 자신의 육체가 내뱉는 사소한 이물질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가련한 거주자로 남았다.


​결국 카프카의 굴에 구원이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제 코 하나 마음 편히 후빌 공간을 얻기 위해 생을 낭비한 인간의 처절한 비참함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문장조차 손가락 끝의 가려움 앞에서는 평등하게 무력해진다. 이보다 더 지독한 부조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굴 속에서 손가락 끝의 딱지 하나에 온 우주를 빼앗긴 채 죽음을 기다리는 위대한 광대들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