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허기진 날이면 추적자의 이빨을 피해 굴을 팠습니다. 눅진하게 말려 들어간 어둠의 심연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일상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 지워진 존재였습니다.
드물게 어떤 비범한 예감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날이면, 나는 모든 생각을 허물고 빛의 한복판으로 나섭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마음으로 태양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 눈부신 장막 너머에서 나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태어나 수레라는 물건을 본 적 없으나,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바퀴의 골조와 그 위에서 꿈틀대다 잦아드는 육체의 비명만은 지독히 선명했습니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형체 속에서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아이의 발뒤꿈치였습니다. 툭 불거진 채 팽팽하게 당겨진 아킬레스건. 그 긴장을 목격한 순간, 나는 그것이 생의 무게를 견디는 한 사내아이의 뒷모습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날의 목격은 균열이 되어 나의 현실을 흔들었습니다. 이제 햇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무덤들이 적막한 거실 위로 돋아나고, 가보지 못한 산맥이 일상을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가 누구든 그 안에서 천진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시구(詩句)를 떠올립니다. 어쩌면 내가 마주하는 기묘한 풍경들은 환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이 삶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내 망막 위에 맺힌 지독히도 뜨거운 실재(實在)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