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문장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이 채워질 틈새를 견디는 일이다.
마음도 언어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나의 짝사랑은 아직 마땅한 문법을 찾지 못한 채 갯벌 위를 부유하는 미문의 상태다. 누군가를 연모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 앞에 서서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과정이라지만, 나는 서둘러 ‘사랑’이라는 단단한 외각(外殼)을 입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자음과 모음 사이, 그 좁고 아득한 틈새를 헤집는 게의 느림을 택했다.
게의 걸음은 비겁해서 옆으로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적지에 닿기보다 발밑에 차이는 감정의 질감을 하나하나 확인하려는 가장 신중한 횡단이다.
나는 네 이름 주위를 그렇게 옆으로 걷는다. 네가 무심코 내뱉은 단어들, 그 끝에 매달린 'ㅏ'라는 모음의 온기나,
내 이름을 부를 때 섞여 들던 자음의 서늘한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직진하는 고백은 명쾌할지 모르나, 언어라는 틀에 갇히는 순간 감정이 가진 본연의 일렁임은 거세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너라는 문장 밖을 서성인다.
집게발 끝에 걸리는 것은 네가 끝내 뱉지 않은 숨결, 혹은 내가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켜버린 음절들. 나는 그 서늘하고도 눅눅한 침묵을 가만히 만지작거린다.
만끽하기보다는 들여다보는 것.
만끽하는 자는 이미 결론지어진 감정을 소비하지만, 들여다보는 자는 이름 붙지 않아 자유로운 감정의 시원을 지킨다.
침묵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선택되지 못한 무수한 고백들로 가득 차 있는 심연임을 나는 그 틈새에서 배운다.
자음의 날카로운 모서리와 모음의 아늑함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모양을 빚는다.
짝사랑이란 결국 상대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가는 길목에 고인 고요를 쓰다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집게발에 묻은 짭조름한 소금기가 결국 너라는 바다에서 온 것임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비린내 나는 느릿한 횡보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의 사랑은 완성된 문장이 되어 너에게 전달되는 대신, 네 이름 주위의 여백을 부유하는 무수한 점들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 하나하나에는 내가 밤새 만지작거렸던 침묵의 온기가 여전히 뜨겁게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