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2

essay

by 김준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이 삶은 사실 어떤 빛깔을 하고 있을까.
오후의 햇살을 가득 머금고 굴러가는 수레를 보며, 문득 지금은 곁에 없는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는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때로 스스로 굴을 파서 몸을 숨기고, 배꼽이라는 아픈 흔적을 지나 그 외로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삶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결국 저마다의 고유한 고향인 엄마의 자궁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궁 이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죽음 이후의 나를 알 길 없는 우리는, 어쩌면 거대한 안갯속에 놓인 무지한 여행자들일지도 모른다. 탄생의 순간, 우리는 스스로 삶을 선택한 주체가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는 조건'이라는 풍경 속으로 툭 떨어진 손님일 뿐이었으므로.


​나의 판단은 내가 속한 시대라는 좁은 창문으로만 밖을 내다보고, 모든 순간은 잡으려 할수록 관념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자궁마저 생물학적 설계가 빚어낸 정교한 결과라면, 삶은 이미 정해진 궤적을 따라 흐르는 은하수이고 우리는 그 흐름에 잠시 몸을 싣고 동승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만약 내게 작은 기도가 남아 있다면,
거스를 수 없는 이 속도에 거칠게 저항하며 스스로를 깎아내지 않는 것.
차라리 이 눈부신 흐름에 호의를 베풀며 기꺼이 함께 흔들리는 것.


​비록 영원한 진리는 우리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과 수레바퀴가 남긴 비뚤어진 선조차 '순간의 진리'임을 믿는 것.
그 찰나의 아름다움 속을 말없이 유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도 지극한 전부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