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관
대학교에서의 인턴 업무는 비교적 단조로웠다.
오전에 다른 장소로 파견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교무실 옆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았다. 보통 12시쯤 점심시간을 가졌고, 그때면 캠퍼스 앞 상점이나 노점에서 음식을 포장해 기숙사 방에서 먹곤 했다.
나는 특히 정문 앞에서 파는 볶음밥을 좋아했는데, 한국에서 가져온 ‘고모표’ 볶은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룸메이트들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종종 소스를 나누어 달라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매운맛에 약한 그들은 결국 한국의 매운맛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다.
또 하나 즐겨 먹던 메뉴는 학교 앞 편의점 아래 이동식 노점(카트)에서 파는 찐 물만두였다. 한입 크기로 잘 빚은 만두에 간장 소스를 버무려 간단하게 맛볼 수 있었다. 이 노점은 연세 지긋한 노파와 그녀의 젊은 아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우리 또래로 보였다.
좁고 쾌적하지 않은 환경에서 만두를 만들고 파는 그들. 더운 날씨에도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 나이 또래의 아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저 친구도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을까?’
본인 코가 석자인데 괜한 주제넘은 생각을 하던 나였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사색을 많이 하는 편이라, 나름대로 이런 질문들에 빠르게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일반화했을지도 모른다.
‘더운데 뭐가 저렇게 좋을까?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힘들 텐데.’
일주일 내내 같은 자리에 있는 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로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항상 웃는 그의 미소가 단순한 일상 속에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의 모습을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만을 떠난 후,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한 유소년 팀의 10일간 LA 전지훈련을 마치고, 밴쿠버로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동생과 나눈 대화에서였다.
외향적이고 친화력 있는 동생은 나를 돕기 위해 밴쿠버에서 LA까지 와서 훈련을 도왔고, 그곳에서도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동생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식사 메뉴를 효율적으로 고르고, 식당 예약까지 완벽히 해냈으며, 헌신적인 활동으로 팀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 모습을 보며 대만에서의 나의 인턴 생활이 떠올랐다. 그리고 형으로서 동생에게 이야기했었다.
“방학 때 캐나다에만 있지 말고 해외도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잠시 생각하던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형, 나는 형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 정착해서 가끔 여행을 다니는 게 더 좋아. 그게 나한테는 더 행복한 삶이야.”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대만 거리에서 만두를 팔던 그 아들이 떠올랐다.
‘아, 행복이라는 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른 거구나. 타인이 판단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것이구나.’
더 이상 내 경험이나 가치관을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사정,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은 모두 다를 테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동반자가 되어주는 게 에이전트의 일이라면, 이 깨달음이야말로 내가 지금의 일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터키 안탈리아에서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