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명 Oct 25. 2021

시간을 모으는 광장

오랜 기물과 사람이 만나는 곳, 모리츠플라츠

만남의 공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넓은 터를 의미하는 광장(廣場), 광장은 많은 것들을 모은다. 이를테면 만남을 갖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 이동을 위해 광장을 지나치는 익명의 다수들, 또 그들의 주변에서 쉼을 제공하는 시설물과 문화적 교양을 배양시키는 공공 전시물 등을 말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교통량은 광장을 거쳐 도심의 각 부분에서 부분으로 유입된다. 이러한 인구 유동량은 공공시설 및 상업적 건물들에게 좋은 입지 조건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광장이라는 넓은 공간 하나를 통해 주위의 요소들이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여느 공간과 마찬가지로 광장 역시 컨셉을 갖는다. 이를테면 그곳에만 가야 볼 수 있는 건축적 구조, 아름다운 조경 디자인, 창의적인 시설 디자인 등을 말이다. 그렇게 광장은 사람들과 기능적 & 심상적 관계를 맺는다. 각 개인은 인식적 확인의 과정을 거치며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장단점 및 특성을 발견한다. 그 안에 좋음의 가치가 있다면 이내 공유 및 확산될 것이다. 더 많은 소통과 유입을 향한 단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광장을 도심 속 광장으로만 국한하기엔 그 사례가 너무나 다양해졌다. 복합 문화공간, 카페, 도심 속 공원 등의 공간들 모두 일련의 의미에서 광장의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모으고 그들이 시간을 소비하는 지점에서 공간적 경험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공간은 경의선 숲길을 따라 위치한 카페, 모리츠플라츠이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광장의 이름을 차용했다. 시간과 사람을 모으는 감각이 뛰어난 곳이다. 어떠한 시각과 좋음의 요소들이 있는지 그 모습을 살펴보자.



빈티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모으는가? 이 질문의 답에 카페 운영의 방향성이 담겨있다. 바로 빈티지 가구 및 기물들이다. 빈티지는 낡고 오래된 것 혹은 느낌을 지칭한다. 또한 복고패션, 레트로 감성 디자인 등의 표현 전반에 적용된 특성이자 유행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들이 내포하는 본질은 옛 것, 즉 오래된 시간이다. 빈티지는 곧 시간을 의미한다. 하나의 유행은 기존의 유행의 단점을 보강하거나 대체되며 등장한다. 일정기간 소비된 컨셉은 다음 컨셉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며 그 빈자리를 새로운 창조 혹은 과거를 향한 복귀의 흐름이 꿰차곤 한다. 기성세대가 즐겼던 옷들이 그들의 자식 세대에서 유행하듯, 먼 미래에도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형태이자 매력을 빈티지는 갖춘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견딘 후 다시 조명받을 수 있을만한 하나의 힘이기도 하다.


모리츠플라츠는 오래된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했다. 갈라진 벽면의 틈과 빛바랜 페인트의 마감 등 과거 누군가의 삶이 녹아든 기록들 위에 현재의 시간을 써 내려간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들을 조명하는 시선의 공간 큐레이팅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낳게 한다. 요즘의 물건 혹은 활동들은 미래에서 어떻게 회자될까? 유행하는 지금의 방식은 후에 어떠한 가치를 남길 것인가?



자연스레 쌓아둔 물건들은 마치 인테리어 시공 현장이나 작업 공방의 인상을 갖게 한다.

비치된 물품들은 모두 판매 중이고, 격식을 덜어낸 배치가 편안함과 실용성을 온전히 전달한다.



브랜드 로고의 모티브가 된 3개의 문, 1980년대 지어진 출판사 건물 구조의 원형을 보존한 것이다. 요즘 서울의 카페에서 흔하게 보기 힘든 문지방의 흔적도 남아있다. 문 앞의 오래된 서랍 위에는 디저트들이 놓여 있는데, 매장 옆 제과점에서 만든 제품들이다. 본 카페와 함께 운영 중이며 구움 과자 들을 직접 조달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디저트의 컬러톤이 공간의 그것과 일치한다. 공간 감상에 미각적 경험을 곁들이는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문지방을 밟고 들어서니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다. 세워진 지 오래된 학교 등의 옛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바닥 디자인 탓이다. 보존된 옛 물성이 공간의 컨셉으로 확실하게 표현된다. 이외에도 구석의 포스터나 전선, 책들은 투박한 듯 차분히 놓여있다. 여유 있는 연출이다. 누군가가 사용하거나 다 읽고 놓아둔 듯한 물건들에서 친밀감이 형성된다. 공간이 우리와 관계하는 전반적인 뉘앙스와 분위기는 편안함에 있는 듯하다. 보다 쉬운 접근은 감각적 &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우) 현대 사진의 거장 볼프강 틸만스의 작품


국내 인테리어의 흔적과 서양의 기물들이 예스러움이라는 주제 안에서 조화된다.

각각의 물성은 편안한 빛을 받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단순한 외관이지만 디자인은 진부하지 않다.


만들어진 기성품들을 가져와 공간을 꾸리는 감각이 뛰어난 곳이다. 레트로 가구 및 디자인에 대한 공간적인 수요가 많은 요즘, 빈티지에 대한 모리츠플라츠의 이해력과 표현력은 더욱 확고해지는 듯하다.




2층 공간으로 들어서기 직전, 문 위와 바닥에 위치한 로고를 발견했다. 시야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 주목받지 못할 수 있는 곳들에도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간과 브랜드에 대한 애정의 마음 이리라.




빈티지와 시간, 임스 체어


브라질 보사노바 풍의 밝은 음악이 들려오는 열린 문 사이로 이색적인 풍경이 보인다. 벽면과 바닥의 마감은 깔끔하지만 천장의 재질은 거친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공간을 채우는 것은 명료한 컬러톤의 의자 직선적인 디자인의 테이블이다. 이외에도 스피커, 보관함, 포스터 등의 기물들 역시 대부분이 빈티지 제품들이다. 1층에 비해 확실히 다채로운 색감이 강조되며 생기가 도는 공간 구성을 볼 수 있다.


개중에서 눈에 잘 띄는 제품은 단연 임스 체어, 허먼밀러社에서 판매하는 이 제품은 1950년대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가 디자인한 것으로 파이버글라스(유리섬유) 소재를 활용한 것이 주된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시각성이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는 스크래치들은 오랜 사용 탓에 생겨난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마모의 흔적이 아닌 소재 자체의 결이 드러난 것뿐이다. 열에 강하고 우수한 장력을 갖추었지만 파손의 위험 때문에 한 때 생산이 금지되었지만 다시 주목을 받으며 재생산되었다. 현재 단종된 상태이며 빈티지 가구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제품이다.


*임스 체어 제작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4v6CL8CeNpw



오래된 것들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클래식ㆍ클리셰와 같은 단어들이 있다. 모두 시간을 견뎌낸 방법들이자 보증된 품질이라는 방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빈티지의 개념은 확실히 개성적인 면모를 포함시키지만, 시간을 겪어낸 가치를 품는다는 점에서 클래식과 결을 같이 할 것이다. 



미드 센추리 모던


빈티지 제품은 하나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원인이 되는 배경 혹은 사조는 무엇일까? 바로 미드 센추리 모던이다. 우선 모던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주의 및 파악할 필요가 있다. 흔히 '모던하다'라는 말에는 현대적이다 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 표현과는 달리 미술 사조의 시각에서 바라본 모던은 꽤나 다른 개념이다. 특정 모더니즘 시기(1920년대 이후)를 지칭하는 의미로써 모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던은 현대의 '컨템포러리 디자인'이라는 용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드 센추리 모던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던 모더니즘 시기를 대표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미드 센추리를 중간 세기로 해석하여 그 시기를 1950~1960년대로 칭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1920년대 '아르 데코' 혹은 1970년대 '빈티지' 스타일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테리어, 제품, 건축, 심지어 도시개발에 적용된 디자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전쟁 이후 독일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도시화와 인구이동의 변화가 활발해지는 시기에 모던 디자인 가구에 대한 수요 증가가 배경이다. 해당 디자인 양식이 널리 적용되어 미드 센추리 모던이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깔끔한 직선과 열린 공간을 추구한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실용적 개념이 담겨 있다. 장식은 줄이고 기능성은 높였다. 색깔과 질감은 재료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클래식한 방향으로 고안되었다. 소란스럽지 않은 절제된 분위기와 깔끔함을 담아낸 모리츠플라츠의 공간 철학이 되는 배경은 미드 센추리 모던에 있었던 것이다.


여행의 향을 담은 향수 제품들

카페에 들러 의자에 앉는 단순한 일이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오랜 기물과 오늘의 사람을 모으는 광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유한 심미성과 기능에 담긴 좋음은 항구적인 호소력을 갖는다. 기물 하나하나에 담긴 물성과 흔적들이 현재라는 빛을 받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어제와 오늘을 모으는 광장은 내일을 향해 무엇을 전하고 있을까.



장소: 모리츠플라츠 (카페&숍)

시간: 매일 12:00 - 22:00 연중무휴

위치: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74

연락처: 010-7546-7122

https://www.instagram.com/moritzplatz_seoul/

작가의 이전글 삶에 맞닿은 차(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