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제시한 개념으로 차이(다름)와 지연(늦어짐)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Différance(디페랑스)라는 표기를 따르기도 한다. 핵심 내용은 특정한 대상의 의미가 하나로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의 의미가 언제든 또 다른 의미로 대체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다원성(多元性)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각자의 관점으로 의자를 바라보는 상황을 그려보자. 한 사람은 고운 외관을 가진 의자라며 색감과 디자인을 들어 칭찬한다. 다른 사람은 신체를 편안히 만들어주는 기능이 실용적인 의자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의자는 어떠한 의자인가? 심미성과 기능성 중 어느 한쪽의 의미만을 대변하는 사물은 아닐 것이다. 두 가지 의미 모두가 적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제3자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질 수도 있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에 다양한 관점들이 담긴다. 그 안에서 하나의 해석은 다른 해석들과 공존한다. 여기서 의미의차이가 발생하고, 그 의미들은 교체되고 대체되며 순환을 이룬다. 결국 하나의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정의 내려짐이 무한히 지연되는 꼴이다.
이러한 불완전성과 연속의 관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존재가 갖는 의미는 결코 하나일 수 없다. 한 명의 사람을 단편적인 성격이나 특성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하나의 관념적 틀에 대상을 고정시키는 것은 차연의 관점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다양한 다름들을 최대한 인정하기 때문이다. 수용적인 자세를 취하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각을 열고, 공존과 어울림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철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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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연장선 위 해체주의적 흐름에서 파생된 차연, 이렇게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건축의 형식으로 풀어낸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해체주의 건축의 전형이자 실존하는 거장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들을 언급할 수 있다. 전통적인 기둥과 천장에서 나타나는 직선적 구조의 세계를 탈피하고, 큐비즘과 결을 같이 하는 작가주의적 창의성이 녹아든 외관이 대표적인 예시가 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 Light Amber
루이비통 메종, 서울 ⓒ GQ Korea
오늘 소개할 공간이 위의 사진들처럼 거대한 물성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서울 합정동 주택가에 위치한 카페 언브릭 커피, 그 안에 해체와 차연의 언어가 담겨 있다. 단순한 커피 그 이상의 철학이 기물들의 선(線)과 여백 그리고 공간감으로 나타난다. 의도적인 불균형을 조화로운 구성으로 풀어내는 은은한 매력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개방과 해제를 의미하는 언브릭(unbrick), 그 모습을 살펴본다.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던 내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 골목을 걷던 분위기가 단번에 씻겨나간다. 큰 부피감을 갖는 기물과 공간 전체에서 느껴지는 여백이 인상 깊다. 크게 내어진 창을 통해 바깥의 상황이 보이고, 자연광은 가감 없이 받아들인다. 빛에 반사되는 나무와 철의 질감은 원형의 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강렬한 주장 없는 묵묵한 색(色)은 은은한 분위기를 덧칠한다.
예상되는 반복적 패턴이나 불필요한 치장은 없이 오직 핵심적인 물성만 남긴 구조이다.복잡하거나 정해진 모습을 벗어던지려는 시각적 해제이다. 하지만 난해하지 않다. 외관은 단순하지만 무게감을 갖는 기물들이 균형감을 확보한다. 자유로운 개성은 흥미를 더한다. 유행을 타지 않는 철학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고유한 예술적 감각이 오롯이 전달된다.
전시장의 거대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앉을 수 있는 의자 겸 테이블로 보이기는 하나 그 디자인이 일반적이지 않다. 특정한 용도로 지정되길 거부하는 모습이다. 1차적으로 낯선 감정이 생겨남과 동시에 이곳의 유연한 개성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테이블이든 의자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 우리의 생각에 맞추어 용도는 변모하게 된다. 그저 유연히 관계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면 될 뿐이다.
동일한 모습을 반복시키지 않는다. 일반 값을 벗어난 선과 형태들을 배치한다. 친숙한 사물의 용도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담백하게 제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선들에 입각하여 기물을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내가 물건을 인식하고 사용해오던 방식을 재점검해본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고를 열어본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나의 방식대로 수용하는 과정이 있을 뿐, 눈앞에 있는 이것이 테이블 혹은 오브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열린 가능성 앞에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나 고정된 인식 따위는 없는 것이다.
커다란 여백이 눈에 들어온다. 감상을 나누기에 앞서 광화문의 D타워와 여의도의 더현대백화점과 같은 부동산 경영 방식을 주목해보자. 보통의 부동산 경영 방식은 부지 매입 이후 해당 면적 안에 가능한 많은 업체들을 입점시켜 임대 및 판매 수익을 유도한다. 그러나 이 둘은 밀도 높은 입점 대신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확보하여 심미적 디자인을 불어넣는다. 사람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고 관계하며 무형의 가치를 소비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상품 구입만을 위한 유도가 아닌 총체적인 공간 경험을 그들의 시간 속으로 전달하려는 목표이다. 기존의 상업적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브랜딩이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넓은 면적의 테이블은 실제 사용률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여백이 주는 고유한 이미지와 감상의 여운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공간을 운영하는 방향성과 초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편 테이블의 작은 일부를 떼어놓은 듯한 의자의 생김새에서 묵직한 통일성이 강조된다. 앉을 수 있는 부분 이외의 면적은 낭비가 아닌 예술의 표현이다. 실제로 자체 디자인한 가구를 주문 제작하여 받은 이후 직접 가공처리를 더하여 완성한 작품들이다. 양산형 제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창의적 수작업이다. 섬세하고 정확하게 발현된 진심의 형태가 놀랍다.
직접 도기를 빚고 판매한다.
컵, 그릇, 에센스 스틱 홀더 등 실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심미적 구성을위한 오브제가 준비되어 있다.
다소 불편한 컵의 손잡이, 의도된 것일지 궁금하다
홀로 놓아진 존재를 바라본다.
만져도 보고 이리저리 옮겨도 본다.
테이블 위 작은 세상에 들어선 나는 창조와 파괴를 동시에 일으킨다.
존재 주변의 여백을 마음속으로 가져온다.
여유로이 나를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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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그는 어떠한 다름으로 이를 해석할까.
익숙하지 않은 대상과의 첫 만남은 때로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함을 밀어내기 전에 그 감정을 먼저 응시해본다.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들여다보는 행위는 새로운 시각과 감정의 근원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감정을 관찰하다 보면 나와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것과 결이 맞거나 맞지 않는 나를 인정한다. 막연히 부정적이었던 첫 인식과는다른 시선이 열린다. 일상적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의 차연이 일어나는 것이다.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많은 것들을 포괄하는 성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