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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Apr 24. 2019

Welcome to Copacabana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호수


"무엇이 문제일까?"

 

남미여행을 시작한지 한달을 넘겨가던 시점, 한가지 의문점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처음 보고 경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큰 감상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감정이 왜 닫혀있으며 어떻게 해야 열리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만한 해결책과 큰 감정변화가 없었다. 당장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장소들에 있고 눈으로 담고 있어도 전혀 체화되지 않는 느낌을 받아왔던 것이다.


 버스 안에서 한창 이러한 생각을 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중, 창가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불현듯 답을 얻어냈다. 바로 한 순간에 말이다. 위의 사진과 같이 창문은 왼쪽이 닫혀져 있었고, 가운데 창틀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열어져 있었다. 바깥의 세상과 현상들은 그대로이지만 마치 가운데 있는 창틀은 내 마음의 기준점으로 같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현재에 감사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셀로판지를 끼워 스스로 불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문은 바깥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열 수 있는 문이었던 것이다. 사실 깨달음을 얻고도 나의 감상은 180도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조금 더 감사하고 순간을 소중히 할 줄 아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평화, 여유, 가족'


그렇게 30분정도 더 달렸을까,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코파카바나(Copacabana)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해발고도 3800m)라는 별칭을 제외하고서라도 바다같이 넓은 크기의 호수와 끝없이 펼쳐진 적란운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무엇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호숫가에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굉장히 포근한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해, 동해에서 볼 수 있는 보트와 기구들이 왠지모를 친근함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 정말 새파랗게 푸른 바다, 아니 호수의 색은 내가 일전에 이런 정도의 선명함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흐릿한 원본사진에 채도를 강하게 올려 생동감 넘치는 보정으로써의 결과물이 눈 앞에 현존하는 듯 했다. '평화, 여유, 가족' 가장 먼저 떠오른 3개의 단어였다. 


숙소이름은 라 쿠풀라(La Cupula), 한인들에게 유명하고 또 환상적인 호수 뷰로 유명한 호스텔이었다. 하지만 호숫가보다는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는 관계로 어느정도 도보가 필요했다. 고산을 체험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몇 걸음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차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만히 있어도 마치 전력질주 후 4/5정도 회복된 느낌의 심장박동이 지속되는 기분이다(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어쨌든 이 숙소는 방에 누워 통유리를 통해서 호숫가를 바라볼 수 있는 방이 갖추어져 있는 고급 숙박시설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나는가장 저렴한 1인실로 요청했다. 사치스러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왠걸, 너무나도 안락하고 깔끔한 방이었다. 숙소의 중요조건 중 하나인 핫샤워도 완벽히 가능했다. 완벽한 시설이 주는 편안함은 야간버스간의 피로를 싹 씻겨내어 준다. 이렇게나 큰 감사함을 느낄 줄이야.. 하하




"한국인이라면 꼭 13번 포차에 가보세요!"


아는 사람들은 알만한 말이다. 코파카바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블로그에 다수 포스팅된 이 13번 포차는 바로 호숫가 앞 식당들 중 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약 15개 정도의 포차가 줄지어 있고, 각 집마다 대부분 유사한 메뉴를 판매한다. 예를 들면 송어요리와 볶음밥류 등이다. 비주얼은 다소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관리상태가 나쁘지 않고 맛도 무난해서 큰 부담감 없이 맛있는 한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13번 포차가 유명한 이유는 한인이라면 음료수 한 병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그 점포만의 마케팅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인에게는 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볼리비아 물가는 한국에 비해 워낙 저렴한 편이라 음료수 한 병 지불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한 병 더 챙겨준다는데! 일단은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매력포인트 되겠다.


식사를 하고 올라와 짐을 어느정도 풀고 침대에 머리를 뉘이고 있자니 어느새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오늘의 계획은 전망대에 올라 선셋을 보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올라가는 길에 사진도 찍고 여유있게 보려면 당장 올라가야 한다는 말! 천성이 게으른 탓에 순간적으로 올라가기 싫었던 것은 사실이나... 오늘의 의미를 꼭 찾아 하루를 마무리 하는 여행을 하는 스타일이라 나는 반드시 올라가야만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직접 보고 카메라에 담아야만 성이 찼기 때문에. 그리고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약 2년 전남미여행에 관한 정보와 에세이를 담은 책을 읽었다. 그 책의 표지가 바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코파카바나 호수의 모습이었던 것인데,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이미지였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남미 여행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전망대는 꽤나 높았고 길이 돌로 이루어져 있어 슬리퍼나 쪼리같은 신발로는 도보가 굉장히 어려웠다. 또한 기본 고도가 3800m이고 정상에 올라서는 4,000m에 달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위치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인이나 고산증세가 없는 사람들은 잘만 다니더라.... 호흡에서 여유로워지고 싶었던 여러 순간들 중 하나였다. 쉬엄쉬엄 경치를 감상하며 정상에 올랐고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죽은사람들을 기리는 비석과 묘지 비슷한 구조물들이었다.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낭만적인 장소는 아니었고, 오히려 굉장히 엄숙하고 성스러운 장소같았다. 실제로 가족 혹은 개인이 제사를 올리러 오고 고인을 기억하며 폭죽을 터뜨리는 행위도 볼 수 있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많은 부분들 중 일면일 수 있고 언제나 직접 봐야 보이는 것들도 있구나."라는 깨달음도 하나 추가되었다.


올라서니 더욱 장관이다.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사진이다


"아, 진짜 행복하다." 


같이 다니던 동행이 말했던 이 한마디는 귀국해있는 지금도 이따금씩 귀에 멤돌곤 한다. 가감없는 순수한 행복 그 자체를 표현한 순간이었기에.. 또한 궁극적인 사진 1장을 뽑아내기도 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일에 한한 것이다. 풍부한 감정과 소중한 의미들을 충만히 느끼고 내려갈 수 있었던 하루였다. 이렇게 감사한 순간들에 행복이 있으며 이것을 자양분 삼아 남은 여행과 삶을 그려나가야 함을 직감했다. 이것이야말로 의미있는 삶의 양태 중 하나이겠구나. 여러분 모두 웰컴 투 코파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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