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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Aug 01. 2022

실격에서 승격으로

인간실격을 읽고


나를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잠식해 들어오는 고통의 시간, 감성적인 중독과 다짐하는 이성 간의 균형을 살아내며 굳은살삼켜내는 마음으로 나를 축적해왔다.


나는 사랑을 갈구한다. 관계의 길에서 미끄러지고, 어느 지점에 발 디뎌야 할지 갖가지 힘과 불안을 쏟으며, 험한 경사로 인해 상처를 얻는다. 하지만 길 위에는 새로운 인연들이 발걸음 하며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나라는 땅의 기본은 순수함과 너그러움이다. 그렇기에 다름과 새로움의 씨앗을 환대한다. 언제나 아름답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나의 이기심이자 사랑받으려는 방법론이다.


한 권의 책은 곧 한 명의 삶이다. 누군가의 생애를 접하며 가슴을 죄어오동요와 동요하지 않으려는 의식의 긴장을 동시에 느낀다. 결핍된 자기를 인정하는 다자이의 정신성은 적극적으로 긍정하, 감정적 무덤을 파내려 가는 깊이를 동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위험 앞에서 에어백을 터뜨리는 강한 본능 덕일까? 아니, 오히려 에어백을 터뜨리기 전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여 감정 속도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 상황인 자기를 조감하고, 발산하고, 승화하려는 예술적 움직임으로써 작가는 글을 썼다. 이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글자 하나를 더 적고 사진 한 장을 더 찍는 행위를 통해 나를 살아내는 예술을 한다. 나의 삶을 실격시키든 승격시키든 '나'라는 화두를 언제나 우선순위에 두고 다루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한 시점 이후의 선택은 성숙한 자기 결정의 성격을 갖는다. 무언가를 쓰거나 찍어내는 일은 손 끝 감각에 나를 온몸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산다는 점에서 화자에게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몸을 물리적으로 내던지는 자살을 행한 그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지만)


사랑받못함으로 사랑할 수 없 화자는 본인의 삶을 사랑으로부터 실격시켰다. 결핍을 채우려 부단히 애쓰는 처연한 마음을 두고도 인간 이기성에 대한 철저한 혐오와 회피적 인식이 앞서 스스로를 사랑으로부터 괴리시켰다.


가족과 친구, 연인 등 관계망 속에는 각자의 이기심이 자리를 틀고 있다. '험한 세상'이라 함은 곧 사람의 본성인 이기심의 영역을 서로가 살아내는 형국을 비유한 것일 터, 소심한 텃세 하나 없는 화자의 마음은 나약한 나체 상태로 타인이라는 통각의 길 위에서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남의 마음을 읽고 맞대는 일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매 순간이 자극인 것임을 화자의 결과적 우울에서 읽어낼 수 있다.


어찌 관계의 결이 맞겠는가? 관계라는 것은 얼마나 취약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급히 만료되는가. 하릴없는 내 마음의 종착점이 정착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붙을 착(着)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관계 안에서 유효한가. 그저 홀로 방랑하고 서로 유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누군가는 죽음에 도착하는 삶을 살아냈다.


나는 스스로를 실격시키려는 의지에 반(反)한다. 본래의 상태가 정(正)이라면 그것이 즈려 밟혔던 과거 사례들이 몇 있었고, 앞으로도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라 예견한다. 하지만 나는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정과 반이 모이면 새로운 합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삶을 긍정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나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고 남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없고 단순히 '그럴' 뿐이라는 자연의 개념에 입각한 삶의 자세가 관계를 긍정한다. 그렇게 나와 타인의 다름을 현명히 살아낼 수 있다.


주어진 심신으로 매 순간을 운전한다. 순풍과 역풍, 고장과 수리, 여명과 노을, 시간의 변화를 달리는 핵심 연료는 내 안에 있다. 그것은 바로 '존재를 향한 발진'이다.


나는 현재를 사랑한다. 인연이 나를 사려하는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건네받은 시점으로부터 나의 삶은 한 단계 승격되었다. 자신을 실격시키지 않고 두 발로 일어난 자아와 맺어진 인연은 그 자체로 귀중하다. 서로의 연약함을 너그러이 위로하고 평가하지 않는 마음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순수와 진심을 배려하는 관계 속에 나의 현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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