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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Aug 04. 2022

부드러운 흑백의 세계 속으로

민병헌 개인전


반년만에 다시 찾은 성수 갤러리 구조의 공기는 미세한 흑백 입자들로 메워져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 탓이었을까, 바닥에 튀겨 오르는 물방울의 습도가 공간에 스미는 몫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눈높이와 가깝게 내려앉은 먹구름은 민병헌의 세계를 뒷받침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이 되었다.


한 장의 사진에 드러나는 작가의 욕망과 미적 탐구의 감각은 단순히 섹스라는 직관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었다.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 무언의 감정과 추상이 내면 깊이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진가 민병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병헌 개인전은 성수동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물인 갤러리 구조에서 진행 중이다. 투명한 창문으로 내어진 1층 입구는 길가와 맞닿은 덕에 매우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누구나 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예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간 디자인


구조의 내부에 들어선다. 흰 벽면에 걸린 커다란 작품은 감상의 시작을 알린다. 좌측에는 직원용 테이블이, 중앙에는 여러 사진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집이 마련되었다. (책을 볼 때는 준비된 면 장갑을 사용해야 한다.)


구석에는 좋은 음향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스피커를 배치했다. 지금의 감정을 차분하게 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시각과 청각이 조합된 종합 예술 체험을 갤러리 구조는 의도하고 있다.



민병헌


작가는 40년간 흑백 사진을 고집해왔다. 암실과 본인의 손을 거치는 아날로그적 방식을 취하며 작업의 시작과 끝 모두를 직접 보고야 마는 사람이다. 덕분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로 표현할 수 있는 미감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일정한 경지에 이른 작가의 경우, 사전 지식 없이 작품만을 보아도 누가 만든 것인지 판단이 드는 경우가 있다. 민병헌 역시 그러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흑과 백의 이분법적 표현을 차용한 사진임에도 그 경계를 완만하게 그려낸다. 그렇게 창조된 작품의 질감은 우리의 감정을 미세한 입자 단위로 쪼개어 주변의 공기 속으로 퍼지게 한다.




그의 언어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드러나게 되는 것은 내밀한 아름다움이다. 사람의 몸을 통한 직관적인 이미지를 드러냄에도 그 뉘앙스는 육체적인 것 너머의 감정과 정신성을 호소한다. 직설적인 사진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욕구를 명확히 그려낸다기보다 형체와 선을 흐림으로써 감정의 여백을 더한다.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흐름대로


작가는 17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경기도 양평에서 보냈다. 그러나 느닷없이 작업실을 전북 군산으로 옮기게 된다. 특정한 ''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해당 공간의 특성을 짧게 설명하자면 그의 아내는 집을 보자마자 바로 서울로 돌아갔을 정도로 무서움을 느낀 바 있다.


사실 그 집은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는 행정적 문제들이 얽힌 곳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6개월 만에 집을 손에 넣는다. 작가는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를 확보한 일이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때 당시 왜 그렇게 이 나갔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느낌'이라는 것이 흐르는 대로 따라갔기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업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진 작업 초기 시절,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낌대로 무작정 찍기 시작했던 그는 실력과 입지가 완숙해짐에도 대상을 보는 시선과 인화 방식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혹은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했다."라는 명확한 의도가 아니다. 그저 본인의 마음에 '와닿는' 방식으로 지속하고 변형하다 보니 지금에 닿은 것이다. 점진적으로 나의 것을 추구해가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결과물이 나왔더라는 것이다.



넓은 시야로 조감하는 풍경 사진들도 있지만, 오히려 풀숲의 세세한 부분을 다루는 작품들도 있다. 자세히 보면 광대한 풍경은 복잡한 부분을 없애 단순히 표현한다. 반대로 클로즈업된 풍경의 경우 세세한 선과 구성 속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초점을 잡아낸다. 작은 부분을 유심히 탐구하는 자세가 온전히 묻어나는 것이다.



주체적 사실


옷의 일부를 보아도 원단이 직조된 수많은 패턴들을 세밀히 관찰하는 사람이다. 사물의 극히 일부분일지라도 너무나 많은 것이 보인다는 그의 주장, 눈앞의 형상과 존재감은 사진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의 내면으로 체화된다. 일련의 소화와 배설을 거쳐 인화된 종이에는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차분한 발산과 승화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민병헌에게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리얼리티가 아니다. 자기의 마음에 와닿는 것을 주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하나의 리얼리티가 될 수 있음을 주창한다.



예술의 긍정적 역할 중 하나인 '새롭게 하기'가 잘 발현된 사진전이다. 몸, 관계, 섹스, 풍경 등에 얽힌 기존 인식의 전환을 은은하게 이루어낸다. 무엇 하나 명확한 메시지를 건네지 않는 그의 완곡한 어법은 정해질 수 없는 가능성 그 자체이며 우리를 열린 상대성으로 인도한다. 부드러운 흑백의 세계로 빠져보는 귀중한 시간을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 419

시간: 12:00 - 18:00 (월 휴무)

연락처: 02-538-4573

전시 기간: 2022.06.22 -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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