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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Jul 11. 2022

사회를 관통하는 섬세한 어둠

노순택 개인전, 검은 깃털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한껏 들어 올린 듯 그로테스크하고 어딘가 공포감마저 드는 낯선 이미지, 전봇대를 잠식한 마른 넝쿨과 나뭇가지를 역광으로 찍은 사진이다. 빛을 받는 면을 정직하게 담지 않고 뒤로 돌아가 어두운 면을 찍은 것이다. 어둠을 통해 본인의 철학과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진작가 노순택의 감각이다. 북촌 학고재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검은 깃털을 소개한다.



작가 소개


작가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진학을 공부했다. 사진사로서 전쟁과 분단이 드러나는 시공간을 응시한다. 여러 전선을 오가며 남과 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고찰한다. 이외에도 용산참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강행, 등 사회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사람을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작업을 수행한다.


2009년 올해의 독일 사진집 은상 수상한 바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518 기념재단, 독일 F.C. 군트라흐 컬렉션 등 국내외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느리지만 중요한 파악


작가는 국내 정치 사회적 현장을 사진과 글로 진술해왔다. 미디어가 훑고 지나간 자리, 미처 훑지 못했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신만의 속도와 정도로 취재하고 탐구한다. 사태의 정면만이 아닌 뒷면과 옆면, 아랫면과 윗면을 더듬는다. 이것이 노순택의 사진들이 역광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이다.  


빠르게 파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특정한 일과 엮인 주위의 요소들을 면밀하고 정확히 살피는 일에는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게 정교한 시선과 넓은 범위의 공부를 축적한다. 보통의 사진에서 피해야 할 조건인 역광은 현상 및 대상의 이면을 암시하고, 진중함을 부여하며, 상상하게 한다.



사진에 포착된 까마귀와 파리가 보인다. 이는 커다란 존재가 작은 존재를 향해 달려드는 상황을 병치하고 엮어낸 것으로 1994년 르완다 종족 대학살을 은유한다.



그는 서울 사진전 검은 깃털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흑백으로 양분된 것 같은 역광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색이 보인다. 우리 사회나 개인의 삶은 지나친 어둠이나 밝음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회색 또는 살짝 어둡거나 밝은 공간에 펼쳐진다." 더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던 것은 아닌, 윤곽(검은)에 갇힌 세부(깃털)'를 보아야 함을 주장한다. 흐릿한 회색 지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이다.




지피지기


전통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할 것 같은 병풍에는 남북 공동합의 이후 철거된 GP 구조물의 잔해, 용산참사가 벌어진 빌딩 위의 잔해, 작가가 거주했던 안성 남풍리의 풍경이 담겨있다. 작가는 "용산참사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과 연대자에게 '빨갱x'라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봤다. 이 작품은 분단 논리가 일상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남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한다는 의미인 지피지기, GP 역시 지피(知彼)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은 분단과 전쟁 앞에서 폭력과 살인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와 관련된 실질적 파편과 공간들을 병풍으로 제작해 한민족의 삶의 배경에는 여전히 파열의 잔해가 산적해있음을 작가는 함축하고 있다.





은 살인


제트기를 바라보는 한 남성의 뒷모습을 담았다. 작가는 전쟁의 수단이자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일명 에어쇼, 비행쇼와 같은 축제의 이름으로 일상에 상륙했다는 점에 착안한다.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광학 등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술이 집약된 것이 무기이다. '좋은 무기'일수록 사람을 잘 죽인다. 사진은 이러한 의미들을 집약한다.


다른 예로 탱크와 군인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판매하는 장난감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들을 엄청나게 확대해 보면 참혹한 전쟁의 단면 들일뿐이다. 위험하고 무서운 성격의 물건들이 놀이의 옷을 입은 채 아이들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가는 꼴인 것이다.



작가가 찍어낸 이미지 자체는 고요하고 적막하며 단순한 것들이 많다. 설명 없이 보았을 때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사진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형상의 사진은 작가의 의도라는 비범한 생각을 만나 걸출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가는 서울 사진전 검은 깃털의 키워드가 '부서짐'이라 말한다. "정치 지형에 따라 바스러지는 경찰 조직, 123주년 노동절 집회 참석자가 피는 담배의 담뱃재, 남일당 남지피 남풍리의 폐허들, 파리를 향해 돌진하는 르완다의 까마귀 등.. 전시장에 작품 설치를 끝내고 나니 '부서짐의 장면들을 모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비가 명확한 역광 사진은 일종의 '극단 주의자 화법'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선과 악 사이의 모호함, 흑과 백 사이의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인식을 은유한다.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서, 어디를 바라보며, 얼마큼의 범위와 세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가?


햇빛 아래 선 존재가 자연스레 그림자가 생기듯, 현상의 뒷면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노순택 작가는 가능한 어두운 이면 깊숙이 들어가 자세를 낮춘다. 자신이 세계 속에 들어가 있으며 그 세계를 자신으로 체화하는 시공간이 바로 그의 암실이자 결과적 어둠인 것이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50

시간: 10:00 - 18:00 (월 휴무)

연락처: 02-720-1524

전시 기간: 2022.06.22 -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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