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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Jul 05. 2022

세계를 그려낸 현대적 사물놀이

네빈 알라닥 개인전, 모션 라인


평면에 원형의 구멍을 뚫었다. 구멍 앞에 기타 줄과 같은 선들이 색칠되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내부 공간은 나무의 재질로 되어있다. 특히 삼각형, 사각형, 원형이라는 기초적 도형의 형태들이 조화되어 있다. 본 사진은 특정 작품의 일부를 찍은 것이다. 물체의 외관과 재질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조합하고 제시하는 작가 네빈 알라닥의 전시, 모션 라인(Motion Lines)을 소개한다. 




건축 디자인


삼청동 갤러리 바라캇 컨템퍼러리의 외관이다. 투명성과 심플한 패턴을 보인다. 세로로 길게 내어진 유리창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리듬감을 형성한다. 내부 공간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정도로 투명성을 조절했고, 거리의 풍경을 동시에 반사시키는 시각적 효과를 보인다. 면과 선의 경계가 명확한 직사각형의 입면이 거리에 맞닿은 형태는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네빈 알라닥(Nevin Aladag)은 터키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작가이다. 조각, 영상을 수단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소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이다. 관람자의 시청각적 경험을 자극하며 문화와 사회에 대한 여러 구조적 문제를 다룬다. 그의 세계관의 일부를 펼쳐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Motion Lines


모션 라인은 애니메이션에서 인물 및 사물의 움직임을 으로 표현하면서 이들의 소리, 감정, 움직임을 나타내거나 전후 동작의 흐름을 연결하는 효과이다. 쉽게 말해 존재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간에 들어서자 악보가 그려진 벽면을 배경 삼아 다양한 오브제들이 각각의 외형과 크기로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고유한 외관과 물성으로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공명기 (Resonator)


본 작품은 작가와 악기 제작 전문가가 협업하여 만든 것이다. 고유한 소리를 내는 현악기와 타악기를 조합했다. 나무로 된 몸통과 기타 줄이 합쳐진 원래의 모습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물체들과 결합됨으로써 완전히 해체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외관과 기능이 해제되고 물질적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로써 완전히 새로운 것이 탄생하게 된다. 고유한 시각성과 물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가 되었다. 낯선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령 기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물건은 더 이상 기존의 개념과 기능에 국한되지 않는 변화의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앞서 작가는 소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각 작품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음성이라는 속성이 담긴 사물들을 시각적으로 엮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감상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관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체험하게 된다. 사물에 음악을 부여하는 작가의 방식이 개성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서로 다른 재질과 모양이 한데 섞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이다. 개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각형, 원형, 종, 기타 줄과 같은 사물과 개념이 도출된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작품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진다. 이것이 모션 라인 전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행진곡, 바젤 Marsch, Basel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구현하기 위해 넓은 벽면과 19세기 포탄들을 사용했다. 거대한 악보와 선 사이에 놓인 94개의 포탄들은 음표를 대신한다. 피아노 음성으로 재생될 음성이 포격과 폭발음으로 대체될 것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전쟁의 상황과 역사 속에서도 음악과 악기는 시간과 경계를 초월하며 끊임없이 연주되어 왔음을 알린다. 정신과 감정을 연주하는 음악과 폭력의 역사를 써 내려간 전쟁의 소리를 융합시킨 작품은 인간의 을 그려낸 시청각 복합물로써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셜 패브릭(Social Fabric)


다양한 문화를 조합한 작품이다. 건축 양식, 전통 문양, 동물의 발자국 등을 참조했다. 그러한 요소들을 패브릭, 세라믹, 알루미늄 등의 재료에 녹여내고 콜라주 하여 하나의 원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적 요소와 생명 등이 섞이고 공존하는 현재를 유연한 원의 속성에 빗대어 작품화했다. 각 요소들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관계와 대비를 확인할 수 있다.





세션 (Session)


3개의 영역으로 나뉜 스크린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영상들이 재생된다. 악기들이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모래를 스치며 소리를 내고, 바람을 타고 차분히 흔들리는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 영상의 공간적 배경은 이민 공동체이다. 황량한 모래사막과 거친 길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악기들은 정처 없는 이주자들의 현실과 존재를 대변하는 역할을 갖는다.


영상의 구도를 보면 사물의 눈높이에서 찍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작품관에서 각각의 사물은 곧 이민자들 개개인이다. 세 가지 섹션을 통해 그들의 눈높이에 완전히 이입하여 본인만의 방식으로 삶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세상과 삶을 그려낸 현대적 사물놀이인 것이다.




음성의 사물화, 사물의 인간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그려내는 네빈 알라닥의 탁월한 감각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작품과 관계하는 기회는 상상력을 키우고 다름을 포용하는 자세를 길러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좋은 경험이 존재하는 하루를 전시를 통해 완성하시길 바란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6

시간: 10:00 - 18:00 (월 휴관)

연락처: 0507-1334-1948

전시 기간: 2022.05.25 ~ 07.24 / 무료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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