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난세 보고서 2

프롤로그 2

by 일선

2. 가난할수록 비싸지는 세상: 금전적 가난세의 작동 원리


왜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을 더 비싸게 사야 하는가? 시장 경제의 상식인 ‘규모의 경제’는 왜 이들에게는 작동하지 않는가? 1부에서는 ‘돈의 가난세’가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금융, 주거, 유통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금융 시스템의 배신: 신용이라는 이름의 낙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은 곧 자본이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신용점수제는 개인의 금융 이력을 평가하는 합리적인 도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층을 구분하고 차별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현대판 신분제로 기능한다.


저소득층은 안정적인 소득 증빙이 어렵다.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조적으로 낮은 신용 점수를 받게 된다. 이들에게 1금융권의 문턱은 너무 높다. 결국 이들은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종국에는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 시장까지 내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금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1금융권의 4~6% 금리는 제2금융권에서 14~18%로 치솟고, 대부업체에서는 법정 최고금리인 20%에 도달한다. 이는 동일한 재화(화폐)를 빌리는 데 최대 5배의 비용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은 이를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부르며 정당화한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논리다. 높은 이자 부담이야말로 저소득층을 파산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다. 높은 이자는 원금 상환을 어렵게 만들고, 이는 다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시스템은 가난한 이들의 절박함을 담보로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구조적 착취다.


주거 시장의 역설: 아파트보다 비싼 고시원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한국의 주거 시장은 이 기본적인 권리마저 철저하게 상품화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높은 가격표를 들이민다. ‘주거 역진성’은 가난세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다. 앞서 계산에서 보았듯이 고시원, 쪽방, 반지하 등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의 면적당 임대료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보다 비싸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현상이 발생하는가? 핵심은 ‘보증금’이라는 거대한 진입 장벽이다.


목돈이 없는 저소득층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다. 이들은 보증금이 없거나 매우 적은 대신, 월세를 높게 지불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월세 전환율’의 함정이 발생한다. 보증금이 적을수록 더 높은 월세 전환율(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이율)이 적용된다.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마치 저신용자가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주거 시장은 이런 수요를 놓치지 않는다. 공간을 최소 단위로 쪼개어 가장 비싼 단가로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창문 하나 없는 1.5평 남짓한 고시원 방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가장 비효율적인 비용 부과 시스템이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와 고시원 데이터를 교차 분석해 이 충격적인 면적당 임대료 역전 현상의 실태를 고발할 것이다.


유통 구조의 함정: ‘가성비’는 사치다


‘현명한 소비’, ‘가성비’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바로 돈과 시간 그리고 공간이다. 가난한 이에게는 이 세 가지 자원이 모두 부족하다. 대형마트에서 대용량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은 중산층의 특권이다. 저소득층은 당장의 현금 흐름이 부족해 대량 구매를 할 여력이 없다. 주거 공간이 협소해 물건을 쌓아둘 공간도 부족하다. 대형마트까지 이동할 시간적 여유나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다. 결국 이들은 집 앞 편의점이나 소규모 상점에서 비싼 단가를 지불하며 소포장된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몇백 원의 차이가 아니다. 생필품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단위 가격 프리미엄은 가계 지출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우리는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데이터를 통해 유통 시스템이 어떻게 가난한 이들에게 체계적으로 비용을 전가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전에 ‘가성비’를 누릴 수 없는 구조적 제약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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