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생활 필수품처럼 되어 있는 휴대폰, 그 것도 그냥 들고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로밍이 자동으로 되고, 비싼 돈을 추가로 더 내면 데이터 로밍까지 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이자 어른 애 할 것 없이 심심풀이 장난감으로도 사용하는 지금의 휴대폰은 1990년대의 수 많은 국제 회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요새는 5G 이동통신을 준비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 ITU라는 국제기구에서는 3G를 준비하느라 한창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컬콤사에서 새로운 기술이라고 제시한 CDMA를 바탕으로 한 국내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여 일을 하고 있던 때로서, ITU에서 추진 중이던 3G 준비회의는 관계자 한두 명이 산발적으로 참석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 ITU에서 하는 3G 준비에 우리나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전파연구소장님의 말씀을 듣고, 몇 달 간 ITU 회의 결과를 뒤지며 나름 준비를 한 후 처음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유치했던 동 회의에는 20여 개국의 이동통신 전문가 120여 명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국제적으로 통일된 표준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나름 준비를 하고 왔다고는 하나, 그동안 논의했던 히스토리도 잘 모르고 또 점잖게 하는 다국적 영어(독일 영어, 프랑스 영어, 스페인 영어, 미국 영어, 영국 영어, 일본 영어 등등)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에 이 회의체의 소그룹 의장을 맡아서 회의를 주재할 때 참석했던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였던 한국분이 나보고 어떻게 세계 각국의 영어를 알아듣고 회의를 주재하는지 놀랐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이런 회의를 우리나라에 유치하여 국내 관계자들이 널리 참석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룹의 의장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결국 2년 후 동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하게 되었으며, CDMA를 성공리에 상용화 한 우리나라의 산업체와 연구소 등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ITU의 3G 준비회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어 지금과 같은 이동통신 강국이 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울러 우리나라 회의 개최 이후 회의체의 총괄 의장은 나보고 소그룹을 맡아서 해보라고 했고, 매우 망설임 끝에 이를 수락하여 점점 큰 그룹의 의장을 하게 되었으니, 그때 우리나라 회의 유치를 추진했던 것은 이래저래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