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봄, 2주씩 연 2회 회의를 개최하던 ITU의 3G 이동통신 준비회의가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첫날 아침 총회가 끝나고, 막 커피브렉이 시작되던 순간 일본 사람 한 명이 단상으로 가더니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 마이크를 잡고 3G 이동통신 표준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관심 있는 사람은 커피브렉 동안 소회의실로 오라는 안내였다.
이 준비 회의에 두 번째로 참석하고 있었던 터라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었지만, 표준일정을 논의하는 회의를 저렇게 갑자기 안내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소회의실에 가보니 겨우 대여섯 명이 앉아서 의장도 없이 일정에 관한 표를 놓고 이런 저런 논의를 약 삼십 분 정도 하더니 서로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회의가 끝나 버렸다.
일본 사람은 동 결과를 본 회의에 제시하며 이렇게 합의가 되었으니, 향후 합의된 그 일정으로 3G 표준을 만들어 가자고 하였고,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동 합의 일정은 채택이 된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중요한 일정을 이런 식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더욱이 그 일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술제안을 해 볼 시간적 여유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귀국 후 이리저리 결정되었다는 출장 보고서를 내고 말 것인지, 아님 뭔가를 해야만 하나 하고 점심시간 내내 혼자서 끙끙 고민해 봤으나,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절차도 잘 모르겠고 뭔가 항의를 하려면 그놈의 영어라도 능숙해야 하는데 그것도 자신 없고, 두 번째 참석하는 회의의 첫날부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스스로에 화도 나고 그랬다.
모래알 씹는 것 같은 점심을 마치고, 회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연히 총회 의장을 만나서 같이 걷게 되었다. 총회 의장은 우리나라에서 연속해서(두 번째 일 뿐이었지만) 참석하는 나를 기억하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말을 걸어 왔다. 순간, 이 사람에게 말을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나름 대로 절차상의 문제 등등을 거론하며 일정에 그런 식으로 정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제법 큰 목소리(목소리 크면 이기는 건 줄로 알고 자랐기에)와 나름 매우 빠른 속도의 영어로( 문법도 틀린 영어를 물론 매우 벅벅 거리고 더듬거렸을 테지만) 그리고 얼굴이 벌게 지면서 (대체로 무식하고 모자란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총 동원해서) 항의를 하였다.
의장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내 말 중간중간 질문을 하더니, 그동안 일본은 표준화 일정 수립을 빨리 정하자고 해 왔으며, 아침 총회에서도 일본은 빨리 일정 수립을 하자고 하여 의장은 일본에게 회의 참가자들의 의견을 들어 안을 만들어 오라 했다고 하며, 그래서 커피브렉 시간에 일본이 관심 있는 사람들 보고 모여 논의하자고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사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회의가 있음을 충분히 공지하지 못한 절차 상 문제는 인정된다며, 한국이 동 일정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하였다.
난 이번 회의에는 한국의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우며 다음 회의 때까지 국내에서 검토를 한 후 차기 회의에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하였고, 의장은 그리하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차기 회의에 일부 일정 연기에 대한 국내 의견을 제시하여 우리나라가 기술 제안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되었으며, 회의에 제출하기 전 일본과 우리나라 의견에 대해 사전 회의를 할 기회가 있어 충분히 협의를 하였으며, 일본은 일부 일정을 연기하자는 우리 의견을 어렵게 받아주었고, 회의 때는 동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까지 하였다.
지금의 생각
- 두 번째 참석한 초보자로서 회의 자료 없이 구두로 진행되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다가 결과가 나오자 그 심각성에 놀라고 당황하고 고민했던 무능한 젊은 모습. 그 결과를 바꾸어 보려고 애를 썼던 자세는 모자람을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던 열정적인 젊은 모습.
- 차기 회의 전에 일본과 우리나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을 놀라게 하지 않고 우리 의견을 반영하게 한 것을 요새는 소통이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