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당신이라는 세계
베아트리체와 단 한마디도 말을 나눈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시 나에게 지극히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영상을 내 앞에 내세워 보여 준 것이다. 나에게 성소를 열어주었다. 나를 사원안의 기도자로 만들었다. 그 날로 나는 술집 출입과 밤에 나돌아 다니는 일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다시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다시 책을 즐겨 읽고 즐겨 산책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졌던 것이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