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빛날 사람입니다."

당신의 아픔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by 나비

에필로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험난하고 날카로운 날들에 이리저리 상처가 나고 벌어져 숱한 피를 흘리고 주저앉기를 수천번. 그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던 나의 가족과 아이들, 소중한 지인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아픔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아픔을 주신다고 합니다.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제가 늘 혼잣말로 하는 외침이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성공한다. 결국 해냈다. 결국 이겼다. 결국 바라는 바를 이루어냈다."


"너가 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세상은 그 역할을 대신해주시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혼소송 2년째. 아직도 돌싱 준비 중입니다.


2023년 7월 어느 날.

30대의 마지막 문턱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변호사님과 마주하였습니다.

"저를 미행하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찾아왔습니다. 도와주세요"


28살의 꽃다운 나이에 혼전임신을 하고 7개월 만난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시댁의 눈총을 받으며 친정부모님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어렵게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겪는 입덧과 몸의 변화에도 회사에 차질을 주기 싫어 출산 일주일 전까지 일을 하였고,

출산 후에는 저의 몸조리와 육아는 온전히 저희 엄마몫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밤낮으로 가게일로 바쁘셔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제가 안쓰러워 물심양면 저와

아이들을 위해 육아는 물론이고 집안일, 가사, 쓰레기 하나까지 도와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집안일, 가사, 육아는 전혀 뒷전이었고 하루 종일 지쳐있는

저에게 오로지 성관계만 요구하였습니다.


술을 먹고 들어와서 하는 말은 "남자가 술 먹고 들어와서 건드려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였고

응해주시 않으면 2시간 동안 수많은 설교와 욕을 들어야 했고 그마저 분이 풀리지 않으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기 일쑤였기에 울며 참고 인내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과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버티었습니다.


시댁은 2시간 남짓거리에 있었기에 1년 중 명절과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자주 찾아갈 수 없었는데

가는 날은 시댁 식구들의 용돈과 선물, 부모님께서 챙겨주시는 선물까지 12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행하였습니다.


시댁에서는 가사와 육아를 친정부모님께서 해주시니 집마련에 보태도록 자금을 빌려주셨고 이 마저도

시댁어른 찻값 등으로 갚아나가고 있던 찰나에도 그 사람은 빚을 갚는 것에 전념하기보다 주식으로 되려

마이너스한도까지 지고서는 "잘살려고 해 본 것이었다 같이 갚아나가면 된다"는 철없는 말뿐이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아이들을 키워준 부모님의 노고에는 "값"을 메길 수 없이 큰 은혜임에도

"너희 엄마가 100만 원 보태줬으면 1000만 원 쳐주고, 1000만 원 보태줬으면 1억 쳐줄게"


제가 결혼생활동안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커리어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엄마의 공이 크니 10년간의 연봉은 엄마의 연봉과 동일하다고 할 것인데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에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의미가 없었습니다. 몸은 피폐되어 난치병의심에 대학병원 가서 치료도 받아야 했으며 아이들 앞에서까지

폭력적인 언행으로 주저앉아 울기를 반복하다 의심까지 잦아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으나

부모님과 동생, 내가 우주인 아이들을 생각하며 꿋꿋이 다시 일어나 보통의 날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엄마와 병원을 가고 있는데 그 사람차가 나를 "미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면서 출차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변호사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절실함, 간절함.

숨결마다 눈치 보고 긴장하고 떨리는 그 순간들을 과연누가 알아줄까요.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에 부모님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여 집에 가면서도 우황청심원 없이는 안됬던 그 시간들을 누가 알아줄까요.

긴장감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그 사람이 거실에서 술 마시고 있는 모습이 두려워서 꾹꾹 참다가 뛰어가듯이 다녀오던 치욕스러운 감정들을 누가 알아줄까요.


이제는 그만두어야만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을 무시하는 그 사람, 아이들에대한 애정이 보이지 않는 그 사람,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그 사람을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 생각보다 기나긴 여정을 보내야 했습니다.

남은 제 삶을 위해,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야만 했습니다.


소송을 준비하며 사실에 기반하여 느낀 점은,

ㄴ자유에는 용기와 책임감과 인내, 금전, 가족 나를 믿어주는 내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ㄴ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앞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용기, 포기하지 않을 용기


ㄴ혼자 있을 때 울고, 책임감 있게 일에 더 집중하고 그 어떤 허황된 나쁜 소문에 휘말리지 않으며 자신을 믿고 마인드를 되짚어줄 책과 강의를 새기며 '할 수 있다. 이긴다'는 신념으로 기다릴 줄 아는 인내


ㄴ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해서 금전적 손실이 많아 어려움이 많겠지만 앞으로의 찬란할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며 절대로 후회하거나 뒤돌아보지 않을 단단한 마음


ㄴ어떠한 환경에서도 절대적으로 나를 믿고 지지하며 응원해 주는 영원하며 절대적인 나의 가족들, 지인들을 결단코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다짐


이 5가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나긴 터널 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지만 결단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혼소송은 생각보다 더 치졸하고 지저분하고 분하고 억울하며 꽤 많은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 체력관리가

단연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혼자서 눈물을 삼키는 날들이 많지만 무던해지려 노력하고 있고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꾸준히 내딛을 수 있었던 이유와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제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아픔과 서러움은 절대 헛되지 않은 시간들이 분명하니 마음먹었다면 용기를 잃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뎌보세요.

그 발걸음은 찬란한 빛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등불이 되어 밝혀줄 것입니다"




나의 엄마, 내게는 삶의 이유이자 전부입니다.


누구에게나 "엄마"라는 단어는 따뜻한 위로와 안락함을 주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글자 일 것입니다.


"엄마, 나 임신했어.."

2달을 혼자 숨기며 힘들어하다 그 사람과 결혼을 다짐하고 무겁게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응, 알고 있어.."

가만히 내 곁을 더 살뜰히 챙기는 듯한 느낌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아는 순간 미안함과 서러움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나에게,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함께 할게"


시댁식구들은 혼전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권유를 받았지만 엄마는 나와 내 아이를 지켜준 은인이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나를 따뜻하고 단단할 수 있게 지켜준 우리 엄마, 아빠.

그러다 3년 뒤 둘째가 태어났고 그렇게 두 아이의 육아와 나와 그 사람의 뒷바라지까지 밤낮없이 가게일을

하면서 지켜주셨습니다.


20대의 끝자락에 엄마가 되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일에서 차별받고 커리어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의 욕심 을 지켜주고 응원해 준 사람은 단연 "엄마"였습니다.


젖몸살에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기고,

18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하는 바람에 울고 보채는 아이를 퇴근할 때까지 업고 달래며 가게일을 보시는 엄마에게 죄송함에 눈물 지을 때, 엄마는 젖은 속옷 속 돌덩이 같은 제 가슴을 보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30대의 제가 치열하게 살아낼 동안 엄마의 아름다운 50대를 저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시고도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에 고마움과 죄스러운 마음에 더 열심히 잘살아서 반드시 크게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30대의 끝자락에는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날을 겪은 서럽고 초라해진 제가 있었고,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던 엄마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느냐며 무너져 내린 억장을 부여잡고 한참을 부둥켜 울었습니다.


아빠를 설득하기에 긴 시간이 걸렸으나 엄마와 저의

진심 어린 대화로 결국 저의 결심을 믿어주셨고 그 사람의 행동의 민낯이 점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마다 확신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소송기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대략의 짐만 가지고 부모님 댁에 들어왔고, 작디작은 집에 동생까지 여섯 식구가 되었지만 1년의 시간 동안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고 지켜주셨기에 굳건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회사에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말하고 다닐 때 묵묵히 저의 귀를 막아주고 흐린 시야를 뚜렷이 만들어주고 마른 입을 젖게 만들어주어 복잡한 머릿속을 정돈해 주던 소중한 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출구가 없을 것만 같던 척박하고 시리기만 한 상황에 따뜻한 온기로 안아 올려 기어이 출구를 찾아주는 내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웃을 수 있고 꿈을 꾸고 있고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기"

"사랑하기"

"베풀기"

"먼지 같은 성공을 매일 체험하기"

"바라는 바를 적어보고 말하고 되뇌기"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응원하고 믿어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 어려운 일을 당연하듯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적"일 것입니다.


곁에 있는 "기적"을 꼭 찾아보세요.


기적을 찾았다면 여러분은 이미 1%이고

행운아이니 그 안에 가득한 행복을 전달해 주세요.


"여기까지 정말 잘 왔습니다. 수고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