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픔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를 처음 품었을때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나의 몸과 정신이 또렷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숨.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중한 생명. 나의 아이들 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임신 중에도 출산일주일 전까지 일할 때에도,
입덧과 방광염으로 고생할 때에도,
여러고비를 넘겨야 했던 출산 때에도,
산후조리기간동안 몸회복이 되지 않아 몇달을 앓았을 때에도,
밤낮없이 우는 아이와 씨름을 할 때에도,
손재주가 없어 이유식을 만드는 데 3시간이 걸릴 때에도,
밥 먹이는 데 엄청난 인내가 필요할 때에도,
잦은 병치례에 병원 입원실에서 출 퇴근을 할 때에도,
어린이집, 학교 보내면서 마음 쓰일때에도,
유리알 같아서 긁힐까 깨질까 늘 노심초사 할 때에도,
그저 아이가 환하게 웃어주고, 자그마한 손으로 저를 잡아주면 그 뿐이었습니다.
아이의 우주라서 행복하고, 나를 믿고 세상에 발딛고 내 곁에 있는 이 아이들이 있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품 속에는 '나의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아빠와 다툼이 잦았지만 어린아이들 앞에서 늘 숨기고 있었는데, 2년 전 이혼을 결심한 그 계기가
발생하였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날, 밖에서 다툼을 하고 젖어들어와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그 사람이 물건을 던지고
의자를 발로 차고 큰소리로 욕을 하고 윽박을 질러,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데리고 방에 가있는 동안 놀란가슴을 부여잡고 울며 주저앉은 저를 방에서 뛰어나와 "엄마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하며 안아주는 아이들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기 싫어 결심을 하게되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에 더 지극히 보살펴주었고 그 덕분에 일과 육아 소송준비까지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하는 동안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보게 되었고, 집을 나와 부모님 댁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그저 저를 믿어주며 불안하고 불편한 환경에도 불평한마디 없이 지금까지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언제까지고 "아자! 화이팅!" 만을 할 수는 없었기에 정말 많은 시간들을 처절하고 지독하게 보내면서 '죽고싶다. 죽으면 편안해질까? 내 욕심에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몹쓸짓을 한 것은 아닐까?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다 놓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면 괜찮아질까?' 수 많은 생각들에 잠식될 때엔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책임감'이라는 무거움이 저를 더 짖눌렀으나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버틴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인내와 정신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시간들 속에 엄마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험난함을 잊고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집안일과 가게일을 병행하며 아이들까지 챙기면서 제 뒷바라지까지 몸이 열개여도 부족한 우리 엄마.
출 퇴근 때 "빨리와 사랑해 보고싶어"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아이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마중나오는 아이들, 잘 때 "잘자 사랑해 좋은꿈꿔" 를 몇번이고 해주는 아이들, 할머니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아이들
기념일마다 받는 사랑스런 편지내용에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밝고 참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에게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시련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기회이니 좌절하지 말고
주어진 소중함에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하기"
하루 한 단어, 한 문장이어도 좋으니 감사일기를 적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실제로 저도 제가 좋아하는 하와이대저택님의 영상을 매일 보고 들으면서 먼지같은 작은성공부터 실천해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그 중 간단하면서 빠른실천이 가능한 것이 "감사하기" 였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고 계시는 독자님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