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간다는 것의 정의란?

"잘 살아간다는 것=잘 사랑하는 것"

by 나비

"안녕하세요. 나비입니다."


한 달여 정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나름 정리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휴식을 선택했었습니다.

작년 12월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올해 1월은 새롭게 시작하는 달로, 본점으로 이동발령이 나면서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단 애를 쓰게 되면서 에너지소비도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만남도 잦게 되고 원래 월경통이 심했는데 40대를 지나오면서 규칙적이던 몸 밸런스가 무너져 불규칙적으로 되어 허리, 배는 물론이고 소화가 안 되어 구역질까지 하게 되니 음식섭취를 자연스레 못하고 잠을 못 자면서 체력손실도 크고 신경도 예민해져서 몸상태가 여러 가지로 좋지 못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소송 중인 상대측이 아이들과 접촉하기 위해 본인가족의 건강이상을 핑계로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던 정황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았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완경 하게' 거절의사를 밝혔고 둘째 아이가 두려움에 울면서 전화가 왔을 때에 침착하게 진정시키고 변호사님께 상황보고드리니 아이들이 원치 않는 상태에 데리고 가면 '신고'도 가능하고 설령 위급상황이 오더라도 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상대측이 아파트 앞에 기다리는 모습까지 보고 지나갔는데도 못 알아봐서 붙잡히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제 아들도 못 알아보는 무지함에 씁쓸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마. 상대측은 이 비참한 일을 벌이면서 제가 연락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감정적으로 움직이던 3년 전의 제가 아니기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냉철하게 준비하고 원하는 결과를 반드시 도출해 내고자 마음먹었으므로 상대측이 업신여기던 '멍청한 여자'로 응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제는 좋아하는 동생과 언니를 만나 모임을 가졌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상과 냉철한 현실의 차이를 호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만들어졌었습니다.

저는 23년도부터 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상대측으로부터 단 1원도 도움받은 것 없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아이 둘을 명실히 키워나가면서 일을 놓지 않고 저의 행복도 키워가면서 절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엄마가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것이 가장 크고, 매일 듣는 하와이대저택님의 전언으로 올바른 마인드를 정착하려 노력하였고, 내 편인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기에 가장 중요한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용기를 주었으며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작은 성공에도 감사하고 온전히 믿어주고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줄 수 있었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요?"


저는 현실만 보고 살기에는 너무 많이 견뎌온 사람이고, 이상만 보기에는 책임감이 많은 사람인데 지치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가려면 어떻게 더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임에서 '툭' 던지듯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네가 작은 나이가 아니기에 너의 자유와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설픈 사랑보다는 재력 있는

안정감 있는 사랑을 해야 한다. 만약 부모님의 도움이 부득이 끊어지고 아이들이 더 성장해 가면서 쏟게 될 비용감당을 지금처럼 너 자신을 꾸며가면서 지켜낼 수 없을 때 회피할 수 없을 만큼의 무너진 자존감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연령 있는 사람을 만나야 앞으로를 영위할 수 있어."

저는 이 말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42살이란 제 나이는 예쁘다 생각했고 번듯한 학원을 보내주지 못해도 착실히 공부하고 또래아이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고 착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감사했고 40년 동안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러웠으며 무너지고 싶었던 매 순간들을 악착같이 견뎌내어 결국

소망하던 직위를 이뤄냈는데 이 행복을 영위하기에는 제 그릇이 아직 작은 것이라는 말 같아서 슬펐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도망쳤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웃음과 안정감을 되찾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무미건조한 회사원이 아닌 상위 10%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께 성실하고 단단한 큰 딸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동생에게 결혼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에게 혼자여도 당당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초라해진 나여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제 친구들처럼 10억짜리 집도, 매월 가져다주는 고액의 남편월급도, 외제차도, 명품들도, 해외여행도, 값비싼 보석과 음식들도 어느 것 하나 제가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없지만,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남자들 못지않게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며 또래여자들보다는 높은 연봉에 아이들과 편안히 살 수 있는 작은집과 안전한 차가 있고 1년에 한 번은 혼자만의 여행을 가고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분기별로 가까운 펜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작게나마 조금씩 저축하면서 건강을 위한 보험이나 미래를 위한 자금도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소송 중인 양육비관련해서도 좋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지난 4년간의 서러움에 위로가 될 것 같아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과에 따라 이혼소송까지 일궈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보았던 '부흥'이라는 영화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계신다'라는 전언이 있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저는 항상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우연은 없다. 인연이고 필연이다. 내가 끌어당긴 결과이므로 괴로움도 받아들이고 이를 더한 행복감으로 바꾸자."라고 생각해 왔기에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해야 하는지도. 어떤 사람을 앞으로 만나야 하는지도. 올바른 사랑이 어떤 것 인지도. 나에게 "딱" 맞게 잘 사는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순간을 살아내기도 벅찬데 오지 않은 미래까지 고려하면서 애달프게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건지 어떤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인데 이 행복을 제가 허락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의 제 기준에서 저를 사랑해 주고 귀 기울이며 다정하고 귀하게 대할 것입니다. 이게 제가 살아온 방식이고 꽤 좋은 결과도 있었기에 당분간은 남의 눈에 철이 없어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부디, 자신의 기준에서 "잘 살아가기를" 온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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