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puzzle)

"삶은 경이로운 퍼즐 속 인지도 모릅니다"

by 나비

돌이켜보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결과물이 뒤따라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신께서 더 나은 삶을 되찾아주려 시련이라는 무거움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이 넘는 소송기간 동안 고된 일도 많았는데 이로 인해 신기하고 경이로운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2년 전 다툼이 있던 날 초보운전이었던 제가 그 사람의 미행을 눈치채고 변호사님께 찾아갔던 날


이날 찾아갔기게 소송장 발송 전에 갖은 험한 말과 협박욕설 행동 등을 낱낱이 담을 수 있었고 때에 맞추어 그 사람이 다른 아파트를 투자목적으로 큰 빚으로 시작한 것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를 미행한 것이 그 날 뿐이 아니었던 것 같았고 제 휴대폰을 열어서 통화내역이나 카톡 등 의심의꼬리를 물고 저를 소설 속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본인명의로 돌려서 저를 옭아매려고 했던 치졸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집에 있던 아이에게 '아빠랑 엄마 같이 안 살 거야 너희는 엄마를 더 좋아하니 엄마랑 살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그 사람 음성을 겁을 먹은 큰 아이가 녹취를 해서 저에게 들려주었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믿었습니다. 결혼생활 14년 중 10년은 '결혼=희생' 포기해야 할 감정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친 제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였으나 변하겠다고 스스로 각서까지 써서 주며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사람은 바뀔 수 있구나'하고 감사했던시간들이 연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소장을 받았던 날 '두고 봐라 쉽지 않을 거다'라고 했던사람이 변호사를 만났는지 다시 다정한 척 본인의지가 아니었다며 사랑한다고 아이들과 저를 포기할 수 없다고 몇 달을 매달리는 '척'을 하였으나 이미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했기에 믿지 않았습니다.

1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우황청심원 없이는 집을 들어갈 수 조차 없었고 화장실이 1개인 집이라 거실에 술 마시고 있는 그 사람이 무서워서 방광염까지 걸려 새벽에 울면서 쿠*으로 간이화장실까지 찾아보는 처절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심리상담까지 받게 되었는데 '아빠가 엄마를 공격적으로 본다. 해칠까 두렵다. 할머니와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내용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심리상담을 받은 것을 알게 된 그 사람은, 아이들을 이혼에 이용하는 천하의 나쁜 x이라며 엄마도 아니라고 하면서 안쓰럽게 생각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5월에 변호사님 조언으로 간단한 짐과 아이들만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숨 막히는 가사조사 시간들.


소송기간 동안 가장 힘든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싫고 두려운 상대와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상대방의거짓된 말을 듣고 반박하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힘든 시간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외부가사조사 4번, 가정법원 3번 총 7번의 가사조사 동안 피가 마르고 머리가 하얘지고 준비했던 말들도 못해서 서류화 시켜서 제출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말을 잘하는 그 사람이 비웃으며 비아냥거렸던 말과 행동에 더 작아지는 제가 초라하고 안쓰럽고 불쌍하기까지 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억눌리며 한없이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시간들이 그 사람에 비해 모자람이 없고인정받는 제가 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한없이 움츠려 들기만 했을까요.

소송을 시작하며 그 사람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가사조사기간 동안에도 시간차를 두며 먼저 도착하여 준비하고 마치고 늦게 출발하는 등 상담동안은 절대 옆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안정을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정도로 그 사람이 두렵고 싫었습니다. 언제든지 아이들과 돌아오라는 말도 구역질이 났고 본인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온몸이 떨렸습니다.


퍼즐


사람은 정말 힘이 들면 신을 찾습니다. 실체를 영접할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 마음으로 정신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애처롭게 애달프게 신을 찾게 됩니다.


늘 하나님께 잠이 들기 전에, 일어났을 때 기도를 합니다.

휴무날에는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처음으로 신당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하느님 제발 이 지옥에서 저를 구원해 주세요'

'부처님 산신령님 저를 부디 애처롭게 여기시어 도와주세요'


40년의 세월 동안 타로는 몇 번 보았지만 신당을 찾아가는 일은 무섭고 두려워서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는데 이 힘든 시간을 선택한 제가 맞는 길을 걷고 있는 건지 다짐을 받고 싶어서 수많은 고민 끝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들어선 저를 보자마자 '아이고 애달퍼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누 고생했다' 하시는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맞지 않으니 혼자서 힘든 시간 이겨내 오느라 수고했노라며 그 사람의 자질과 행색을 말씀해 주시는 동안, 여태껏 봐왔던 타로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꽤 유명한 타로를 봐왔었기에 물어 찾아간 신당에서도 같은 말을 당부하는 것을 듣고 제가 한 선택이 정말 잘한 것이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 가사조사가 처음 있는 날, 절에 올라가 시주를 3곳에 드리며 기도를 하고 내려왔는데 너무 떨린 제가 말을 제대로 전달 못할 것을 대비하여 편지형식으로 적어온 것을 어떻게 전달드릴지 고민했었는데 그 사람이 딱 15분 정도 늦는 바람에 모두 전달드릴 수 있었습니다.(저는 5분*3곳 15분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면 엄마와 올라가서 초를 올리고 시주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작고 오래된 차가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 차를 큰 맘먹고 구매하게 되었는데엄마와 마트를 가던 길에 트럭이 신호를 받고 있는 제 차를 박아서 앞 범퍼가 다 떨어져 나가게 되었는데 크게 다친 곳은 없었고 되려 입원치료를 하면서 생각정리를 더 단단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주방인테리어를 계획하고 계셨는데 저와 아이들이 같이 살게 되면서 엄두를 못 냈던 차에 큰 아이가

바이러스감염으로 입원치료를 받게 되면서 저는 출퇴근을 병원에서 하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인테리어 기간과 맞아지면서 순조롭게 진행을 할 수 있었는데 이기간에 아이의 소식을 고민하다 그 사람에게 알렸으나 친구와 예정된 여행을 가는 등 병원 근처에도 오지 않아 '아사람은 정말 바뀌지 않는구나'라고 한번 더 새겼습니다


12년 동안 시댁과 큰 어르신들, 형님들까지 단 한 번도 쉼 없이 명절동안 선물과 용돈, 시댁 조카들까지 챙기면서 '고맙다. 네가 이렇게 잘하니 좋다. 사돈어른이 아이들과 우리 아들 뒷바라지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하시며 좋아하셨는데, 다툼이 있고 나니 시아버지는

'야 이 사기꾼아 니 밑에서 애들이 잘 자라겠냐' 하고 호통을 치셨고, 시어머니는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들 넌 친정 곁에서 잘 먹고 잘살지 우리 아들 어떡하냐'

하시는데 당시 저는 스트레스로 난치병판정에 물 한 모금 먹는 것도 힘이 들어 살도 빠져 힘들어하던 시기였습니다. 형님들은 연락도 없었는데 큰 형님이 '아버지 병원비 보태야 하니까 곗돈 나머지 해지해서 보내라' 며 병원장 사모님이 고작 400만 원이 없어서 생활비나 양육비도 못 받고 있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고민 끝에 딱 절반을 보내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 하고 차단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뜻하지 않게 인사이동발령이 났는데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전에 없던 집중력과 배움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설정해서 사람들과의 분산된 만남을 모두 끊고 진실된 만남만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아직도 진행 중인 2년간의 소송 중에 너무나 많은 돈을 잃었으나 피폐해지고 흩어져갔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갔습니다. 수년간 낫지 않았던 난치병도 치료되어가고 있으며 가족의 무한한 사랑의 감사함과 내 사람들의 조건 없는 믿음과 따뜻함을 선물 받았고 아이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전의 밝고 명랑한 모습에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아직 젊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뒤 돌아보지 말고 자신을 무한신뢰하여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직진하여 반드시 보답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습관처럼 출퇴근 시 좋아하는 마인드셋 강의를 듣고, 책을 몇 장이라도 넘겨보고, 눈을 감고 이루고자 하는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렇게 용기 내어 글을 적어보기도 합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에게 학원을 여러 곳 보내며 밤늦도록 공부를 시키지는 못하지만, 한 군데의 학원이라도 꾸준히 잘하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그저 믿어주고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엄마이지만 세상에서 제가 가장 예쁘고 좋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직도 '예쁜 공주'라고 해주는 아빠가 있어서 행복하고,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라며 날 살려준 엄마가있어서 하루하루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감히 장담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둡고 험난한 비포장길 위에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빛을 밝히고 부드럽고 폭신한 비단길로 만들 수 있으며 그 길 주변으로 싱그럽고 향기로운

나무와 꽃을 심어주는 내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어떤 상황에 놓여있어도 절대 포기 하지 마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무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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