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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Dec 29. 2022

낯선 나라에서 엄마로 사는 일

© crkmaga, 출처 Pixabay                                          


"주민번호는 모르세요?"


아이 소아과 진료를 기다리는데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오거나 도우미 선생님과 진료를 보러 오는 경우엔 종종 아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주민번호를 적는 모습을 봤었다. 


"외국인 등록증도 없으세요?"


이 말에 고개를 들어 접수대를 쳐다봤다. 슬리퍼를 신고 남색 바탕에 노란색 달과 별이 그려져 있는 수면바지를 입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서툰 우리말을 하면서 뭐라고 했지만 잘 알아듣긴 어려웠다. 


"진료비는 만 오천 원 정도 나올 거예요. 주민번호 없이 접수하면 비용이 그만큼 나올 수 있다고 미리 알려드리는 거예요."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면 진료비가 그 정도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꾸 그 모녀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옆방 진료를 기다리는 중이었기에, 먼저 진료를 보고 나온 그들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다섯 살쯤 됐을까. 여자아이는 무섭다고 연신 울었다. 외국인 엄마는 너무나도 따뜻한 말투로 아이를 달랬다.


"무서웠지? 장난감 사러 가자~ 괜찮아."


주민 번호, 외국인 등록증.... 그런 것들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을 마음, 슬리퍼를 신은 채로 급하게 집을 나왔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난 그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살아가는 마음, 특히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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