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아이로, 주변을 살필줄 아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란다고 그게 진짜 엄마가 바라는 거라고 아이의 생일마다 편지를 쓴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나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아이가 유치원갈때까지 매 해 생일 귀저기나 분유를 미혼모기관에 보내곤 했었다. 정말 작은 마음이었고, 어쩌면 내 마음이 훗날 내 아이에게 올거라는 생각으로 쭉 이어갔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는 학교를 가기전까지는 어린이집에 매 해 동화책을 기증하고 장난감을 기증하는 일을 했었다. 물론, 익명의 기부였었다. 생색을 내고자 했던 일이 아닌 그저 그런 마음들이 지우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이 갈거라는 생각도있었고, 내가 힘들어보니 진짜 힘들다는것이 뭔지 알아서였다.
그렇게 공부못해도 된다고, 하고싶은 일을 하면된다고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할수있는 일들이 많다고 해놓고
오늘 시간이라는 수학문제를 앞에두고 이해가 더딘 아이에게 고함을 치는 내모습은 극도로 모순적이었다.
94초를 분으로 바꾸는 문제가 뭐 그렇게도 세상 뒤집어질 일이라고 답답해 했는지, 모르면 알때까지 가르치는것이 부모의 몫임을 알면서도 20문제 가까이 풀고도 모르겠다고 하며 풀이 죽어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걸 모른다고 할 수있냐고 윽박지르듯 이야기하고 말았다.
어렵고도 간신히 문제집 한페이지를 풀어내고 건너방에가서 가방 정리를 하는 아이를 앉혀두고, 엄마가 설명을 안해줬으면 모르겠지만 이건 지우 네가 엄마 얘기에 집중을 안해서 그런거라고하니 대답이 허를 찌른다.
" 그렇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잖아 엄마!"
순간, 정적이 흐르며 아무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깟 시간 문제가 무어라고 아이를 그리 궁지로 몰았을까 싶은게 울컥하여 꼬옥 안아주니 그제서야 서러웠던지
대성 통곡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이만할때 산수문제와는 담을 쌓았었다.
나는 그렇게도 소금물 문제가 나오는 서술형 문제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때 우리아버지께서는 컵에 실제 소금물을 받아서 가르치시다 못해 그래도 이해를 못하니 그 물을 내 머리에 부어버리셨던 기억이있다.
왠지 가끔 수학문제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와 어지럽힌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때의 내아버지와 다를바없는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를 살면서 바뀌었어야 할 모습이 그대로 몸과 말에 베어 나오는지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것을 잘 해낼 수 없는 나이이고 이제 하나하나 여물어가는 시기인데 무엇이든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 받아들이는 나이인데 엄마라는 사람이 참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구나 싶은 반성이드는 날이다.
잠든 아이를 보니 더없이 짠한 마음이든다. 나는 부모로써 아이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한다고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