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서 40을 채우던 그 시간이 그렇게도 더디다 싶게 지나갔었다. 10대는 왕복 세시간 남짓 거리의 학교 다니느라정신없이 보냈었다.
남산 밑에 살며 대치동, 개포동까지 8학군이 뭐라고 부모님은 한사코 전학시켜주시는걸 거부하셨었다.
그래서 등교를 하려면 러시아워를 피하기위해 또 버스에 앉아가려면 아침 6시에는 움직여야했다.
중학교는 숙명여중이라 고등학교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고등학교는 경기여고라 버스타고 잠들어
거의 종점 가까이되면 저절로 눈이떠졌다.
잠을자면서도 안내방송과 커브를 돌때의 느낌으로 대략 어디쯤이다 라는걸 알 수 있었으니 6년간 402번 버스의 노선을 몸으로 익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년을 그렇게 다녔지만 졸업장 외에 8학군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별게 없었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드라마에서 보듯 극성 엄마들도 없었고 친구들도 학원을 전전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치열하지도 누군가와 눈치작전을 해가며 경쟁하는일도 없이 유년시절은 등하교에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20대가되고 3년뒤쯤 나는 진로를 정했고 우연치않게 각종 알바를 해가며 풋풋한 추억하나없이 열심히 살게되었다.
생계를 책임질 일도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시간을 알바와 학업에 쏟으며 매진해왔던것 같다.
스무살이 되면서 한달에 8만원받던 용돈이 끊겼고 핸드폰비와 차비를 해결해가기 위해 알바를 그만둘수없었다. 그러다 어차피 글쟁이로 길을 정했으니 방송작가를 한번 해보자싶어 여러방법을 모색하던중 간이 배밖으로 돌출을했었는지 덜컥 막내작가 입사지원을 한것이
붙었고, 그길로 글도쓰고 섭외도하고 취재도하고 등등 사람의 몰골은 포기하고 방송국 내에 노숙자가되어 살게되었다. 그때가 정말 초스피드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늦게 시작한 탓에 마음도 조급했다.
글을 쓴다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반은 끈기로 반은 오기로 버텨냈다는 표현이
그때의 정의로 맞는 표현이지 싶다.
누구나 삶의 방향이 다르듯, 삶의 속도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가는 시간에 연연하는 편은 아닌데
아이가 태어나고는 하루하루가 한달 두달이 그렇게 한 해가 가는 시간이 무척이나 빠르다.
어느새 열살이 된 아이를 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새삼 시간의 빠름도 같이 느끼게된다.
2021년을 맞이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한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100일간의 글쓰기를 이 도전을 얼마나 지켜갈수있을까 했는데 벌써 꽤 많은 글들이 쌓여지고있다.
아이가 잠들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마음을 다잡고 다른분들의 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고있다.
살아가는 모습이란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며 글마다 정말 다르게 와닿는 느낌도 생각도 모두가 같지않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고 함께 할 수있다는 것이 이런 설레임을 주는구나 싶어 100일의 도전 이후에도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