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성장 중인 '나'새끼를 돌보며 살고 있습니다
서른에는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십의 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넘어가면 당연히 통장에 몇 천만 원이 쌓여 있을 거라고, 세상 물정을 꿰뚫어 보는 의젓한 '어른다운 어른'이 될 거라고 말이다. 서른의 반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터무니없다. 스물아홉의 나는 서른이 되면 웨딩피치나 세일러문처럼 변신 마법이라도 쓸 줄 알았나 보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면 뿅 하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에 데이터 값 입력하듯 사회나 경제 지식이 쌓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요망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서른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나이를 쓸 때 2가 아닌 3을 먼저 쓴다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앞으로 쓸 글이지만 생각의 흐름을 짧게 정리했다.
1. 십의 자리 숫자가 1에서 2가 됐을 때는 주민등록상 성인이 됐다는 즐거움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2에서 3이 되니까 더 이상 나이를 세는 게 무의미하다. 서른이 서른하나가 됐든, 서른하나가 서른둘이 됐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가만 중요했다. 내 직급이 무엇인지가 결국 나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2. 친언니와 일곱 살 나이 차이가 난다. 내가 스무 살 초반 때 언니는 이미 서른이었고, 결혼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조카가 태어났고 지금은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이다. 조카와 손잡고 거리를 걸으면 간혹 '젊은 엄마'로 오해받는다. 조카랑 닮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는 딱 젊은 엄마라나. 가끔 조카가 '이모'를 까먹고 '엄마'라고 부르면 당황스럽다. 내가 "이모 아직 어려! 사람들이 오해해. 이모라고 불러야지!"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네 나이 서른이다"라며 나이를 상기시켜주면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나는 엄마에게도 배우는 게 많다.
3. 서른이 됐을 때 故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스물아홉, 서른의 청춘들의 눈물샘이 마르고 닳도록 울린다는 전설의 노래를 들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정미라의 <언니>를 듣고 출근길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 비 오는 날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노래가 발표됐을 그 시절의 '서른'은 지금의 '서른'과 다른 개념이었리라. 당시에는 서른이면 어르신들이 의레 말하는 "옛날에는 서른이면 결혼하고 애가 둘은 있었지"가, "결혼할 때지"가 실제로 이뤄졌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른이 되어서야 사회초년생이 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서른이지만 연애 한 번 못해본 사람도 많고, 서른이라도 통장에 돈 천만 원이 없는 사람이 많다. 나라고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갈길이 삼만리다.
아직 나는 성장하는 중이다. 사회생활 6년 차이지만 통장에 천만 원이 없고, 이제야 연애라는 걸 시작했고, 일다운 일을 해보는 중이다. 서른이 되니 이제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 왜 소중하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서른하나가 되기 전에, 서른의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조금씩 기록해보려 한다. 어쩌면 서른하나의 나는 서른의 '나'새끼의 글을 보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지금 내 주변의 서른 넘은 지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처럼, 아직 철들고 있는 서른의 귀여운 동생이 올린 일기 정도에 머무른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