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 가서 '지공 선사'들에게 지급되는 시니어 프리 패스를 받았다. 내가 이제 정부에서 공식으로 인정하는 노인이 되었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이 또한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65년의 인생을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이제는 하나님이
'너 이제 그만 오너라'
해도 크게 아쉬울 나이가 아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은 인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친구들 중에도 세상을 떠난 이들이 꽤 있다. 병으로 또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았어도 감사할 일인데, 육십오 년을 무사히 살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여든아홉의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고 계신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버지께는 무척 송구스러운 일이나, '지공 선사'가 되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 나를 노인으로 대접해서 지하철을 공짜로 타도록 대우까지 해주니, 설령 늙지 않았다 해도 노인의 행세를 해야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노인은 우선 걷는 게 불편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지난번 교회 체육행사 때,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친 이후 지금도 절뚝거리며 걷고 있으니, 우선 노인으로서의 기본자세는 갖추었다.
그러고는 요즘 들어 눈이 침침하여, 눈에 뵈는 게 없다. 또 귀는 어린 시절 계곡에서 멱을 감다가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 그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던 안티푸라민을 귓구멍에 잔뜩 집어넣어, 귀에 고름이 생겼다. 그 후 고막이 손상되어 귀 수술을 한이 후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노인의 자격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
그다음은 머리털인데,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아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리털이 한 움큼씩 빠지고, 이제는 누가 봐도 인정하는 대머리다.
또 염색을 해서 머리털이 검은 것이지 사실은 호호백발이다. 염색을 하게 된 것은 여고에서 근무하고부터다. 처음엔 멋쟁이 젊은이를 흉내 내어 갈색으로 염색을 했는데, 며칠 지나면서 점차 색깔이 변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정철의 관동별곡'을 가르치고 있는데, 맨 앞줄에 앉아있던 강신주가
"선생님, 개털 같아요!"
하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학교 앞에 있는 이발소에 가서 검게 염색을 하고, 두 번 다시 갈색 염색은 하질 않는다.
'이 정도면 노인의 자격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 들어 밥을 먹을 때마다 질질 흘려서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듣는다. 내 딴엔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밥을 먹은 후 내 자리를 보면 국물이 흥건히 묻어 있다.
여고에서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선생님, 재밌는 얘기해 주세요!'
그러길래
얘들아, 내가 지난주에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을 타고 가는데 말이야, 어떤 아줌마가 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를 데리고 타는 거야, 근데 그 아기가 빽빽 우니까, 아줌마가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아기한테
"너 자꾸만 울면, 할아버지가 이놈 할 거야!"
그러는 거 있지,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다음 역에서 부리나케 내렸어.
이야기를 하는데 이상하게 아이들 표정이 심드렁하다. 분명히 지난 시간, 옆반에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아이들이 '까르르 깔깔' 난리가 났는데 말이다.
그때 한 아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 그 이야기 세 번째 하시는 건데요."
아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듯했다. 여러 개 반을 돌며 수업을 하다 보니 어떤 반에서 무슨 농담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 점심때 만난 친구가 아침에 뭘 먹었냐고 묻는데, 그것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처럼 바로 전에 먹은 음식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노인이 갖춘 고상한 미덕이다.
명절 때 고향집에 가면, 아버지는 신이 나서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말씀하신다. 이번 설에는 식구들과 고향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밤늦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수십 번은 들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는 장단을 맞춘다. 그런 날은, 밤이 새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이 이어진다.
그런데 요새는, 내가 아버지처럼 그렇게 하고 있다. 딸과 사위를 만나면, 나는 신이 나서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말한다. 착한 사위는, 마치 그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장단을 맞추는데,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다하고 나면, 딸아이가
"아빠, 그거 들은 얘기야"
그런다.
'그러면 진즉에 말을 해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또 노인은 새벽잠이 없다.
우리 집 고양이, 까망이는 오 년 전 추석날 다리 아래서 굶주려 있던 갓난아기였다. 까망이는 낮에는 내 침대 이불 속에 들어가 한나절 내내 자다가, 새벽에 수시로 일어나 벽을 긁거나, '야옹!' 거린다.
그러면 나는 얼른 일어나서 밥을 주거나 놀아주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벽에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은 까망이가 벽을 긁지 않아도 새벽 네시면 눈을 뜨게 된다.
이제 나는 시니어 프리 패스를 받았을 뿐 아니라, 노인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자격을 어느 정도 가졌으니, 오늘부터는 지하철을 타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경로석에 앉아도 되겠다.
며칠 전에 송정역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발 디딜 틈이 없이 만원이었다. 나는 겨우 서서 가고 있는데 앉아있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면서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그런다. 내 옆에는 나이가 드신 진짜 어르신이 서계셨는데.......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니까, 내 팔을 덥석 붙들더니, 자기가 않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또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회로애락의 감정은 줄어들고 매사에 담담하다.
지난봄 어느 날,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평소 다니는 병원에서 보호자와 같이 오란다. 보호자와 같이 오라는 말은, 환자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다. 나는 곧바로 대전행 열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갔다. 대전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담당 의사가 컴퓨터를 들여다보더니 말을 꺼내는데, 전립선 수치가 높아서 조직 검사를 했더니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더니
"암이네요."
가슴이 덜컥했다.
'암이라니.......'
당황하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태연하셨다.
"수술을 받아야 하나요?"
아버지가 물었다.
"나이가 드셔서 수술은 권장하지 않아요."
그러자, 아버지가
"수술을 안 해도 돼요?"
"예"
그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진료실 밖으로 나가신다.
나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진료실 밖으로 나오는데, 그 사이 아버지는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호사가 한 달에 한 번씩 오셔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자,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내가 주사 하나는 잘 맞는다'
며,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병이란 게 잘 데리고 놀면 되는데, 자꾸 신경 쓰면서 가만두지 않으니까 문제여, 잘 데리고 있으면 해롭게 안 해, 그놈을 가만두지 않고 자꾸 괴롭히니까, 성질 나서 난리를 치는 거지"
나는, 암 진단을 받고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한 아버지처럼 그러질 못한다. 몸에 작은 이상이 생겨도 금세 걱정을 하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니어 프리패스를 받긴 했지만, 진정한 노인의 자격을 얻으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