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모두 허전함을 느낀다. 그걸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 하고도 '복잡한' 형태로 허전함을 채워보려고 한다. 가정으로 돈으로 인맥으로 연애로 음식으로 게임으로 스포츠로 등산으로 풋살로 육아로 영화로 사색으로 뉴스로 종교로 사이비로 리그오브레전드로 넷플릭스의 섹스라이프랑 365일로 유튜브로 여행으로 섹스로 딜도로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공짜 야동사이트로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다이어트로 몇 킬로 줄어든 체중계를 보면서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석세공으로 캠핑으로 인스타로 혹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혹은 나보다 못난 사람들과의 모임으로 술로 온갖 맛있는 산해진미로 혹은 이번달 월급날 며칠 남겨두고 소소하게 편의점음식으로 어학연수로 외국어 공부로 자격증 공부로 좋은 회사 나온걸로 나보다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보면서 내 고통은 좀 나은 듯ㅋ 하면서 유튜브 찍는 취미로 요리로 도움도 안 되는 책들로 아니면 도움 되는 책으로 베이킹으로 자기계발로 보이스피싱으로 알바로 이렇게 여기 쓰는 글로 채워보려 하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응 아직 허전해'라고 외치고 있다.
뚫려버린 가슴은 이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허전하다. 나더러 성공해 봤냐고? 묻는다면 내 전생이 몇천 번 있다 치면 그중에 네이마르만큼 성공한 날이 있지 않았을까? 비성공자의 개 헛소리로 들릴 시에 네 말이 맞음. 실은 헛소리 아니다. 인간은 다들 몇천 번 살아봤다. 우리가 기억을 못하고 전생이란 눈에 보이지않으니까 태어나고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틀어주는데도 그 영화 내용을 잊었으니까 다시 보기야 하는데 뭔가 익숙한 영화 내용아니던가? 우리가 그럼 왜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익숙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특별히' 더 좋고 누군가는 '특별히' 더 싫을 수가 있고 어떤 연예인한테서 내적친밀감이라는걸 느낄까. 세상은 우연이라는 말을 너무도 좋아해서 이제껏 우연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놓쳐왔다. 님들이 느끼는 이게 우연이야...???라는 것들은 그 하나도 단 한줄도 우연이 없다. 0.00001% 도 우연은 없다.
허전함과 결핍은 인류가 바로 잡아야 할 무엇이다. 결핍 덕분에 계속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도전을 하기때문에 결핍은 좋은거라고들 많이 주장한다. 그래 좋은것들 추구하다가 걸레짝이 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정신으로 하...이건 좀 아닌데 하게될 날은 반드시 올터이니. 난 단호히 결핍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외치고싶다. 타협은 없다. 어차피 그 허전함은 못채울거니까 헛짓거리 더 이상 할필요가 없다는걸 알려주고싶다. 인간은 어차피 다죽네하는 그런 뻔한 소리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도전은 좋다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지쳐간다.
나는 성관계를 좋아하는 편이라 연애를 끝낸 지 몇 개월 지나니 어떤 남자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져서 매번 야한 꿈만 꾸다가 어쩔 때는 어릴 때부터 꾸던 반복적인 악몽에서 깨서 새벽에 괜찮아 괜찮아하며 나를 다독여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거나 높은 곳에서 교량점검을 하고 무서운 놀이기구를 잘 타는 내가 가끔은 회사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공황발작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화장실로 도망치고 헉헉 거리고 있거나 사람 많은 장소에서 주저앉고는 공황발작이 와서 헉헉 거리고 친구한테 부탁을 하면서 "미안한데 내 손 좀 잡아줘....."하고 있다. 나는 왜 그런 허전함과 공포를 느낄까? 정도는 다달라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인 우린 과연 무엇으로부터 이 "허전함"을 느끼냔 말이다.
이유는 우린 지금 하나(oneness)를 잊었기때문이다. 우린 본래 완벽한 하나였다. 완벽한 하나였던 우리들에게 하나의 광기어린 생각이 들어왔고 그걸 웃어넘기지 못하고 자꾸 심각해져갔다. 그리하여 우린 완벽한 하나로부터 '분리'를 선택했고 이 광활한 우주를 만들어버리고는 도망칠 어떤 장소를 찾아서 작게 작게 쪼개져서 우리 중 누구는 어떤 행성에 파란색 외계인종족으로 태어나고 그보다 작은 어떤 행성인 지구 안에서 땅과 바다를 만들고 공기를 만들고 여러 미생물을 만들고 아담 1호를 만들어서는 인류를 번식시켜서 남과 여를 만들고 낮과 밤을 만들고 키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을 부러워하고 아, 키 큰 사람도 키 작은 사람 부러워할 때 있더라. 암튼 누군가는 좋은 대학에 가고 또 어떤 이들은 대학조차 가지 못하며 누군가는 도시생활을 하며 시골지역에 산다며 놀린다! 타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은근히 타투를 멋있어하면서도 싼티난다며 위로를 하고 타투한 사람들은 이젠 자신의 얼굴에 남아있는 점들도 빼고 싶지만 멋진 자신의 타투를 뽐내고 남들 보다 '좀 더' 특별함을 뽐낸다. 고대민족들 보면 타투를 했던 민족들이 있었다. 그중에 내가 있을거라 믿으면서 타투하고 후회할 내 자신을 이번생에서는 미뤄보도록하고 있다. 워낙 후회를 잘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타투를 하고나면 나같은 사람은 감당안될 것 같다. 타투를 하고싶어질 때는 내 정신상태는 어떤 최면에
걸린 것만 같다. 타투가 엄청 치명적인 매력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런 대상으로 보인다. 이건 악마의 유혹같다는 느낌도 든다. 내게 좋지않은데 먹어보고싶은 대창구이같은 느낌이다. 이 좀 더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도 결국은 ego가 하는 짓이다. 내가 분리된 이후로 몇천번의 생동안 미남이었던 삶만큼 추남이었던 삶도 있었을 것이고 미녀였던 삶만큼 추녀였던 삶들도 있었을것이며 부유하고 남들이 다 알아줄만큼 유명세를 탔던 인물인 만큼 똥통에 처박히고 아무도 못알아주는 삶을 살기도 했을 것이며 쾌락주의적 삶을 살았던 것만큼 금욕주의의 삶을 살았을 것이며 선인이었던 만큼 악인이었던 삶도 똑같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원하고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안해봤을거란 착각은 말자. 다해보고도 그게 기억안난다면 난 그게 되어본적없다며 착각을 한다. 이번생은 네이마르의 차례이지 네이마르같은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삶을 사는 사람조차도 똥통에 처박힌 인생도 살아봤을터이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살인마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게 설령 아무것도 모르는것처럼 보이는 갓난아기라도 말이다.
아무튼 우린 하나였던 일원성에서 ego의 광기어린 생각이 일어나 분리가 되어 이원성이 되었고 이원성의 파생어이자 동의어인 다양성이 나왔다. 다양성은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 순수 비이원론에 대해 다룬 책을 읽었는데 마음이 행복을 되찾았다. 행복을 되찾은 정도랄까 내가 행복 그 자체가 된 기분이었다. 그 책을 읽는 동안은 원래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떤 기분이냐면 그 순간 내가 천국 그 자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