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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청조

by 시간 끝에서 온 빛

나는 전청조랑 똑같다. 전청조라는 사람은 허영심의 대명사가 되었다. Yesterday 날씨는 참 예술이었어. rain이 올락말락하다가 아니 글쎄 내가 딱 outdoor에 나가니까 햇빛이 비추더니 rainbow가 막 나오더라니까?I'm so god's 아들이라니까~

지져스 이꼬르 나라니까 그러네?


모 요런식으로 사람들이 전청조를 놀리는 댓글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재밌다가도 너무 많이 쓰니까 노잼이 되어가기도 하는데 혹은 그녀의 낯부끄러움을 개그로 승화 혹은 정화시키려는 시민들의 스스로하는 비꼼일지도 모르겠다. 전청조를 보면 낯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나의 마음에도 전청조와 같은 낯부끄러운 면모가 아주 그득그득그득×10000 많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않다면 그녀를 놀릴 이유도 불쌍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낯부끄럽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을테니까. 나는 사실 그녀를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나도 징그러운 부분을 그녀한테 전가하려는 시도를 했기때문이다. 사실 내 징그러움인데 말야. 이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결국 그녀는 나라서 안아주고싶었다. 나랑 같은 존재니까 나도 전청조이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은 그녀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대못을 박으려는 시도는 물론 아니다. 그런식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들은 정말 그녀의 거짓에 깜빡 속아넘어갔고. 속은 사람이 죄라고 바로라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속은게 어찌 죄일 수가 있는가. 전청조는 남들을 속이는 동시에 나 자신을 속여 지옥속에 빠져가는 자신을 보고서 초조함에 떨고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녀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수렁텅이에 빠진것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은 실은 세상에 너무도 많은데 사실은 정말 사실은 아무것도 잘못되지않았고 아무것도 수렁텅이에 빠지지않았다.


나도 진성 찐따 시절을 보낸적이 있어서 무인도의 디바를 보면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무대를 펼치고 각광을 받는 모습을 그리는 상상을 많이하고는하는데 그리하여 허세와 허영을 일삼은 적도 많이 있었다. 직장에서 유튜브를 몰래 촬영한적도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바쁜척하려고 전화가 많이 오는척도 많이 했다. 엄마가 회장님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곧이 곧대로 우리 엄마의 인맥을 자랑하기도했으며 무학소주 사장님과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님이 사돈 지간으로 지낸다는 남들은 많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서 허영을 채운적도 많았다. 우리집은 개빈털털이에 난 신용불량자이더라도 말이다. 부자같은 그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는 진짜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변에 해가면서 채워지지않을 허영을 채우려는 시도를 계속 했다.

또 내가 저지른 허영은 이미 태어나기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대신에 전청조가 나의 다른 형태로 태어났다고도 생각했다. 다들 상상해보라. 이번에는 전청조의 차례지만 그게 전청조가 돌고돌아서 내가 된다면? 치가 떨릴만큼 무섭지않아? 그러니까 그녀를 욕하는 것은 결국 나를 욕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욕하지말자. 단한번도 허영심이 든적이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질 수가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라면 기분탓은 아니다.ㅎㅎㅎ


내가 온세상 사람들에기 구라쟁이가 된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있는 근원적인 엄청난 공포이다. 전청조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비웃을 수가 있을까? 진짜진짜로? 인간들의 밑바닥의 불안한 집단적 무의식 부분이 그녀로 나타났을 뿐이다. 미디어가 온댓글이 온 사회가 그녀가 일으킨 그녀만의 문제로 몰아가려고하지만 사실 진짜는 내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전청조만큼이나 가오를 장착한 인간인데

난 엄마한테서 태어났을 때 "아 눈부셔 불끄라니까?"라고 또박또박 말을 하고는 했다.ㅎ


사회에는 구라 하나못하는 테레사수녀같은 이미지의 나라는 인간상이 있고 입만 벌리면 구라치는 전청조같은 이미지의 나라는 인간상이 있다. 내 안의 전청조의 낯부끄러운 부분은 그녀를 비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비판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테레사 수녀랑 전혀 다를바없는 무한함의 일부가 아니라 무한함 그 자체로 보는 것이 내 안의 전청조를 없애는 길이다.


그러나 전청조를 무한함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정말 드물다. 거의 없다. 거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있다. 그래도 있는 그곳이 거룩함의 장소이다.

그렇게 보기어렵더라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볼 수 있다면 당신이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온 세상은 당신덕분에 잠시나마 쉴 수 있을 것이다.

편안히 편안히.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모두 무한한데 어찌 하나만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오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않겠다.

왜냐하면 나의 내면에는 영원한 순결이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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