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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Jan 10.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프롤로그

지금 내 나이에 돈 한 푼 못 모은 여자는 결혼을 못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돈이 없다.

결혼시장 도태녀라고 할 수 있겠다. 굳이 나 자신을 이렇게 까내리는 이유는 남들이 까내리기 전에 나를 까내리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뭐라도 해보려는 심보이다.

그래, 망해도 되니까 뭐라도 하자.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돈이 없는 이유는 보이스피싱을 당했기 때문. 주변에는 부끄럽기 때문에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사기에도 부끄러움의 급이 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같은 걸 당해서 개인회생 중이라고...?'

라고 하면 못 믿는 눈치이다. 보이스피싱으로 8000만 원 손해가 있었다는 말을 누구한테 말하냐고.

그래서 나는 일단 대외적으로 전세 사기 당했다고 말하고 다닌다.


내 나이에 차도 없고 모은 돈도 집도 없으며 한부모가정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수치심을 뒤로 한채 나는 더 이상은 고립될 수 없어서 여러 모임의 사람들을 주말마다 만나고 다닌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니

뭐라도 된 것 같았다가 A형 독감에 걸리고야 말았다. 아참 독감원인이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같지만

원인은 친동생이다. 진짜 그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내 인생 통틀어서 그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A형 독감의 다른 이름은 미치광이 내지는 사이코패스이다. 물론 내가 지어낸 말이다. 미치광이 A형 독감에 걸리면 평소에 미미하게 아픈 통증부위가 강도가 10배는 되어서 쿡쿡 찌르고 몸에 이렇게 다양한 근육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온몸에서 발생하는 근육통들 온도 항상성이 무너져내려 오한과 금방 더워서 식은땀이 발생해서 다시 오한을 느끼는 루트 무한반복.


그러다 이런 생각마저 들정도로 아파오는데


'나, 이대로 죽는 건가? 좋은 인생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죽고 싶지 않아'



아무튼 죽고 싶지 않았다. 죽어도 미련 없는 똥통에 처박힌 인생이었을 텐데도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있다고 느껴서였다. 그런데 그게 무슨 할 일일까?

아마 그런 미미한 나의 '할 일'에 대한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그때 진짜로 죽었을 것이라는 직감도 느꼈다. 나는 내 인생을 만회하고 싶었다. 제발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연봉 4000 넘는 통근버스가 다니는 회사에 이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을 넣고는 있는데 계속 떨어지고. 주변에서 결혼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사기당한 여자를 데리고 갈까 만약 가까스로 기적처럼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까? 그냥 노예생활과 다름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결혼은 내가 제대로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하는 것.

팔려가듯이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안 할 수 있는 거 맞나? 지금의 나에게 결혼은 불가피한 건지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판단 내리지 못했다.


'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다. 주변에서 그렇게 운전을 배우라고 했을 때 무섭다는 이유로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운전을 배우지 않았다. 아니 당당한 이유도 아니었지. 무서워서 안 배운 거니까. 운전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리고 누군가를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운전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나에게 한계를 세우고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부추겼다. 나에게 짙은 이 죽음의 공포는 어디서 온 걸까? 왜 나는 남들처럼 운전을 못할까? 라며 무서워서 운전을 피했다.


나는 이상한 느낌을 잘 받고는 하는데 내가 운전을 했다면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대신에 내가 차를 사서 차를 몰다가 사람 한 명 치이게 하거나 내가 나를 크게 다치게 했을 거라는 이상한 아주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내 예감이 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확신에 찼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광기가 내게 있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나서의 내 상태는 거의 죽음의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가족들한테 미안해서 죄책감에 죽고 싶었다. 이선균을 생각하면 그가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너무도 큰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태였을 것이다. 나도 2023년에 강한 죽음의 감정을 느낀 자로서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까웠다.

하지만 죽음만큼 독한 환상도 없다.

죽음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많은 이들이 착각하곤 한다. 나도 수천만 번이나 죽음이 탈출구라고 착각하고는 했으니까 탈출구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일단은 살아서 즐겨보자. 이게 다였다.

무언가 해내야 할 일도 견뎌내야 할 현실 같은 것도 없다.

사기를 당하면 나는 남들보다 더 아껴야 하고 못 즐겨야 할까? 아니다. 다시 0이 되었으니까 전보다 더 즐거워도 된다. 결혼 못하는 건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냐는 내면의 음성이 자꾸 들려온다. 결혼은 요즘에 죽음과도 같던데 결혼해도 이혼율도 높던데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우면 정말 그게 전부다.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내가 시도한 모든 방법들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8000만 원을 앗아간 보이스피싱범의 얼굴을 한 스승이 내 인생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지금 너무 행복해요. 깊이 감사드려요.


내가 독감으로 사경을 헤맸을 때 미미하게 느꼈던 나의

할 일이란, 바로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었다.

나의 할 일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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