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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Feb 04.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serial number one 사이비

아무것도 아닌 무거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글은 편집증적인 증세가 강한 글입니다. 무서우면 뒤로 가기 누르세오.>


내 삶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본다면 남들이 볼 때 우아하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리하여 내 치부를 절대로 모르게 하고 싶다.


삶에서 최초의 기억은 유모차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기억이 인생 최초기억이다.


이걸 몇 번이나 여기다가 쓰고 지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가 일본인이고 아빠가 한국인이다.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도 쓰기를 꺼려할 만큼 나는 치부를 드러내는 두려움이 너무도 컸고 크고 클 것이다.


그것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끔찍함 속에서 태어난 나를 과연 다들 버리고 가지 않을까 하는 분리라는 이름의 두려움이 원인이다.

이것이 내가 자기 수용을 못하는 원인이고 남들을 내게서 도망치게 만드는 원인이다. 사실 내가 아무 일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내 마음속에 두려움이 남아있다. 남아있는 두려움을 없는 척 덮어봤는데 다시 열어봤을 때 내 온 인생과 장기를 들쑤시고 다닌 크나큰 괴물의 모습을 하고 강력해져서 근육을 벌크 업하고 내게 돌아왔다. 무서운 새끼.


나는 사람들이 이런 나를 알면 버리고 갈 것이라는 크나큰 불안과 상실감의 괴물을 지금도 안고 살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안전함을 여전히 못 느끼고 누가 나를 죽이지도 않는데 누가 나를 찌르러 올 것처럼 도망 다니고 남에게 의지를 잘못한다. 그게 남들에게 독립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으로 밖에는 안보이겠지만 의지 못하는 병에 걸린 하자 있는 앞길 막막한 사람일 뿐이다.


감이 오는가 모르겠는데 부모님 둘은 사이비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대에 엄마가 한국에 오래 거주한 일본인이면  통일교 신자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리기를 지금도 무서워한다. 무서워한다고 말했지만 공포를 느낀다.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내가 사이비 신자였다는 것이 들킬까 봐. 그리고 요즘에는 많이 줄었지만 반일감정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자라서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전제가 내 깊숙한 곳에 깔려있다. 통일교는 규모가 큰 사이비종교단체이다. 어릴 때 그게 정상적인 교회인 줄 알고 어릴 때 그곳에 있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통일교에도 10 계명이 있는데 예배는 그것을 줄줄 읊고 시작한다. 그 10 계명에는 "절대복종"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아직도 생각하면 배 안쪽에 역겨운 느낌이 나면서 토할 것 같다. 내가 불안해지면 화장실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이비에 속한 가족들이 그리고 내가 그 단체를 믿었던 기억이 내게 엄청난 치욕스러운 수치스러운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기억이 된 것이다. 나는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고 죽음밖에는 답이 없다며 스스로 괴롭혀왔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존재를 서서히 부정하고 사랑할 수 없었고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쁜 단체에서 나온 일원이 나라고 생각하니 나는 나를 서서히 죽여갔다.


'이런 더러운 나를 깨끗한 남들이 알게 하면 안 돼'


이것이 내가 지켜온 비밀 첫 번째이다.


태어남이 잘못됐는데 뭘 더 하냐는 마음이 강했다.

가장 처절한 기억이었다. 종교란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인생 최초 믿음이 잘못되었다 생각을 하니 내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이비에 속았다는 그 비참함과 처절함이 내게 아직도 견딜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아빠는 통일교 신자이다. 개인이 그러고 싶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극도로 행복해야 마땅할 때에 그 기억으로 밧줄에 묶인 낙타가 되어 나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사랑을 온전히 할 수가 없다. 더러운 나랑 깨끗한 남이 진정으로 우정을 쌓거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밀감을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말을 함으로써 남들을 아프게 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더러웠다. 더러운 나를 내가 사랑할 수 없었고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 리 없다고 늘 느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엄마는 통일교 10 계명을 어릴 때 열심히 외우게 했다.

통일교에는 외국인 사이비신자들이 많다. 한국 신자들과 외국인 신자들을 결혼시키는 것을 통일교 언어로 축복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축복을 해서 낳은

나 같은 사람을 보고 2세라고 한다. 통일교에서 결혼하면 축복가정이라고 하는데 저주가정으로 바꿔 말하고 싶었다. 남들이 이런 것을 실은 알게 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는 회자시키고 싶지도 내가 회자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모두의 머릿속에서 통일교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다.


나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은 나타나면 안 된다.


생각보다 이런 치부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니 비밀로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아직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 기억이 너무도 복잡하니까 언급도 뉴스에서도 언급을 안 했으면 좋겠다. 사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라고 진심으로 남들이 여겨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서 기대도 안 하고 살고 있다. 그 일이 진심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주는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었다.


내가 통일교에서 태어난 사건보다 두려운 진짜 이유는 이런 일을 겪은 나를 보고 별 큰 일을 겪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그게 진정으로 두려웠다. 실제로 내가 통일교에 다녔었다는 사실이 학교에 어쩌다가 퍼진 적이 있다.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을 나는 너무도 빨리 알아차렸다. 그때 내가 느낀 공포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것도 내가 초중고 통틀어서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런 사실을 주변에 알렸고 내 이야기는 듣지를 않고 나에 관한 오해들을 가까운 친구들이 묻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에게 아주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되고서도 그 친구는 나의 아픔이 조롱거리라도 되느냐. 드라마 구해줘의 서예지 배우가 나 같다고 말했다. 나는 구해줘 를 못 본다. 너무 아프니까.

안타까워서 했던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도 아팠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추잡스러운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팠다.


인생에서 만난 내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의 패턴이 있는데 어쩌다 우리 엄마가 일본인인 것을 알고서 또 눈치가 빨라서 내가 사이비 신자였다는 것을 알아채면 그것을 내 약점 삼아서 나를 공격하고 나를 경계하고 나를 위험인물로 간주해 버리고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 내가 조금 괜찮은 면모를 보이면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틀리면 내 약점을 이용해서 나의 약점으로 자신을 위로 삼는다. 더러운 나와 깨끗한 너로 나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인생에서 수시로 빈번히 아주 자주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다고 그게 익숙하지는 않다.

매번 아프다. 물론 나도 더러운 나와 깨끗한 너로 나눈 적이 있다. 남들이 나를 단죄하니 나도 그래보고자 했던 것 같다. 내가 남을 공격하지 않으면 나는 끊임없이 공격을 당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또는 반일감정으로도 그런 흑백현상이 많이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사이가 괜찮다가도 내가 마음에 안 들거나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일본 욕을 나 들으라고 크게 크게 말한다.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간절히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상처받으라고 하는 말이 맞다. 나는 매국을 한 적이 없지만 매국노에 한국인을 학살한 사람들의 피를 물려받은 더러운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하더라도 나는 그저 도덕적 관념 없고 비상식적인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게 맞는 것이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는 한다. 자기는 원래부터 일본이 싫었다고 너랑은 관련이 없다고 상처받지 말라고 자기는 일본을 싫어하는 것이지 모든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역사 앞에서 징징대는 한 개인을 모르는척하려는 나 하나쯤이야 상처받아도 되는 그런 마음이라는 게 나는 아팠다. 그냥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더러운 나 하나라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사람의 보호덕에 그나마 살아왔다. 개미를 돋보기에 불태우지 않고 그저 지나가게 해주는 사람들 덕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

개미는 너무 작아서 국적이 어딘지 구분도 안 간다.


하나 인생사 내가 상처받는 것은 내가 상처를 주었기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맞다. 이 세상의 이치는 그게 맞다. 아무런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와 관련되지않은 세상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안다. 아는데 아는데도 일본 이야기 나오는 순간 나는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한국에도 일본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었다. 그 둘 중 어느나라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순수하게 축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의심없이 한국과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축구랑 야구를 잘 못본다. 나도 왜 안보고싶을까. 나도 그냥 편안하게 즐기고싶다. 하지만 나는 오해받을까봐 어느쪽을 응원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애국자도 매국노도 아닌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국을 응원하면 비꼴 것 같다. 나 주제에 한국을 응원하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무섭고 일본을 응원하면 그냥 나는 역시나 매국노 개새끼가 되는거고.

내가 얼마나 꼬였냐면 애국자는 애국자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애국자를 매국노가 되기싫어서 남들에게 죄를 전가하는 나쁜놈 아닐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게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는 증거이다.


 애국자가 어찌 자기만 성스럽고 깨끗하고 남들은 다 더러운 사람만드는 악질이 될 수가 있을까? 상처를 받다보면 그런 렌즈를 끼고 세상을 꼬인 시선으로 본다. 내가 봐도 나는 진짜 꼬이고 꼬였다. 나도 국뽕이라는 것을 간절히 느끼고 싶다. 그런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나.

그런걸 느낄 수 없을 때가 있다. 국뽕 일뽕 아메리카뽕

다 그냥 그렇다. 싫다기보다 그런 유치한걸 유치한걸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데 그런걸 느낄 수 없을 만큼 많이 지쳐있다.



 그럼에도 아픔에는 난이도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고자한다. 아픔이란 크든 작든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을 느끼면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내가 행복하지않은 것은 똑같기때문이고 내가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은 똑같으니까. 어차피 같다. 남들이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것을 불행히 여기든 내가 사이비에서 태어나 불행함을 느끼든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일으켜 주민들이 집도 없이 피난을 다녀 당장 식수도 없는 불행함을 느끼든 어제 가족이 살해당해 분노와 슬픔에 절어있든 좋아하는 남자를 뺏겨서 3일간 상사병 거식증에 걸리든 다들 행복하지않은 상태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실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 안전하지못하다고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잘못된 착각이 맞다. 나에게 숨겨야할 부분이 치부로 여겨야할 부분이 비밀을 만들어야할 부분이 하나도 없어야하고 남들도 그래야만한다. 내가 나의 치부를 만들면 남들도 스스로 숨기는 비밀이 늘어난다. 인생을 들쑤시는 괴물이 늘어나게 만들 수는 없다. 나의 치부와 비밀을 모두 해방시키고싶다. 지켜야할 비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싶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죽어도 절대로 모르게 하고싶다는 생각도 실은 강하게 들기는 하다. 그간 공격을 많이 받아왔으니까. 남들이 나를 열등의 대상으로서 스스로를 위로를 받고있는 꼴 보기가 싫었다. 물론 안그런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만큼 똑같이 있었겠지만. 나도 나보다 힘든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아무것도 겪지않은 순수한 존재로 보지않고 안타까워만하며 그들의 공포를 늘렸다는 점에 나도 똑같은 개새끼가 맞다.



나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 그들은 나만큼 상처가 깊지않은줄 알았다. 왜냐하면 둘다 친구도 많고 자기 일도 잘하고 사기도 안당하고 혼자있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다. 기분의 불안정함이 소비습관의 불안정함이 되는 나보다는 적어도 건설적으로 살고있다고 여겼는데 그들도 사람이라 새언니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오빠가 엄마를 사이비 종교로 인해 많이 탓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힘들었구나했다.


  나는 미녀와 야수의 야수마냥 한강에 사는 괴물마냥 고립되기를 좋아한다.


 남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일이 있어도 그건 그냥 내가 조작한 내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이라며 나를 제대로 안다면 도망갈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지치고 컨디션이 안좋으면 그러한 그릇된 믿음이 더 강력해지기도 했다. 여기까지 나의 가장 큰 아픔이 사이비신자였다는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진짜 큰 아픔인 것 같았는데 쓰고보니 별거 아니네.


그나저나 드라마 구해줘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날이 내게 오면 그거는 치유된거 아닐까? 하여간 진리는 단순하나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복잡함 그 자체이므로 앞으로의 복잡다단한 치유여정이 계속될 예정이다. 투비컨티누--두둥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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