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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Feb 04.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serial number two 아버지의 가정폭력.


나는 남들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못드러내기에 이곳에 글을 쓰고있다.

나 자신을 수용하고 치유하고싶기때문에 나의 치부를 여기다 쏟아내고있다.


언젠가 나를 보여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아버지가 매일 때렸던 것은 아니다. 정말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은 매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다. 가정폭력은 양상이 다양하다. 매일 아버지가 심각하게 때리는 것만이 가정폭력은 아니다. 엄마 혼자 자식을 키우게 하는 것도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데 생활비를 오랜기간 지급하지않는 것도 가정폭력이다. 집안에 들어오는 횟수가 1년에 3번이면 가정폭력이 맞다. 그 중에 설날과 추석에만 엄마에게 며느리 노릇을 시키는 것은 가정폭력이 맞다. 온집안을 아빠가 박살을 낸 적도 있었고 엄마를 멍들게 때린적도 세번정도 있었고 엄마 목을 조르던 것을 오빠가 필사적으로 막은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성공하시고 외도를 자주했는데 바람을 피시던 유미라는 아줌마를 안다. 그 아줌마는 미용사셨는데 아버지가 3000-5000만원으로 아줌마 미용실을 차려주었다.


나는 유미 아줌마랑 40일정도 같이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 나이가 한 11살정도 동생이 9살 정도였는지 그것보다 컸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한참 엄마 아빠가 통일교에 빠져있을 때 엄마는 통일교 40일 여수 수련회를 떠났다. 오빠는 학교 기숙사에 있었다.

그리하여 엄마는 아빠에게 나와 동생을 맡기고 통일교 수련회를 떠났다. 아빠는 집에 안들어오고 회사 옆에 집을 지어서 그곳에서 유미 아줌마랑 같이 사셨다. 물론  엄마 모르게. 모르게 해도 외도를 하고있다는 것쯤은 엄만 다알고 있었다. 유미 아줌마는 나중에 해외로 나가서 더 부자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때쯤에 아빠는 부하직원의 신고로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 아빠는 열심히 골프를 치고다녔다. 예쁜 캐디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인생을 즐기셨던 모양이다. 인간은 당연히 즐길 수 있다.  회사의 법적관계로 신고를 넣었던 그 부하직원과도 실은 내연관계로 알려졌다. 부인이 될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재미만 보시고 책임을 회피하셨나보다. 그리하여 엄마도 아버지와 이혼을 내가 20살 때 하셨고 내가 30살이 된 지금에서도 이혼소송이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회사가 부도가 났다. 엄마에게 접근해온 아버지를 사기치려던 작자와 공작을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사기꾼과 같이 아버지 회사를 부도시켰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자식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내가 상처받을만한 가장 큰 아버지의 외도가 있었다. 그것은 나랑 비밀일기장을 쓸 정도로 친한 친구의 엄마랑 아버지가 외도를 하셨다는 점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셨는데 일찍 돌아가셨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친구의 어머니가 나와 친해지라고 지시해서 친해진 것이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셨다. 내가 그 두분의 외도를 알게 된 것은 나랑 가장 친했던 초중고 친구가 내게 알려주었다. "땡땡이 어머니랑 너네 아빠랑 친해?"라며 내게 물었다. 통뼈 감자탕에서 둘이 밥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신 모양이다. 아버지가 참 로맨티스트라서 재밌다.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되고서는 내 대학등록금 대신 초등학생 때 내게 접근했던 그 아이의 일본 유학비는 내주고있었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도예가가 되었고 그 아이의 언니는 승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도 그렇게 훌륭하게 자라다니.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지않았지만 훌륭히 자라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들도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또 번외 외도지만 아버지는 쓰리썸을 하시다가 엄마에게 들켰다.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왠 여자두명이 전화를 받는 것이다. 아빠가 자는 동안 전화를 일부러 받은 것이다. 이것말고는 아버지의 바람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바람은 필 수도 있다.


 그래도 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특별히 엄마가 나를 더 정성껏 키웠다고 해서 아빠는 불행하고 엄마는 삼만배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인적이 있기는 했으나 내가 바란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으니까.

  그냥 똑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누구하나 특별할거 없이.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상을 하고있는 남자에게 끌린다고 나도 그런 남자를 만난적이 있다. 연애를 잘하다가 어쩌다 한번 내 목을 조르고 나를 때렸다.  나도 때렸지만 결국 경찰엔딩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경찰을 불렀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끔찍했다.

사실 아직도 경찰을 불렀던 것이 마음에 걸리긴했다.


아버지가 매일 가족을 때리는 것으로 가정폭력을 해온 것은 아니었으나 아버지는 딸의 인생도 많이 바꿔놓았다. 내가 만나는 남자도 걸국은 유미 아줌마를 품게 되지않을까하며.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어서 내 온몸을 내던지고 다녔다.

나를 귀하게 여길 수가 없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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