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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Feb 04.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아픔 브리핑 시작

사람들이 트라우마라거나 강박이라거나 편집증을 유니콘이 존재한대~정도로 보지만 나는 그런 것들의 결정체이다. 어딘가 꼬인정도가 아니라 진짜 많이 꼬였다. 세상을 꼬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나의 앞길 막막한 불행의 비법이다.  


나는 안전을 늘 필요로 했지만 그걸 늘 보장받지 못해서 나를 열심히 숨기면서 살아왔다. 맞다 나는 안전하다고 못느낀다. 신뢰를 하는 곳에 문제가 있다.

아니 어쩌면 안전이라는 것은 신뢰라는 것은 도처에 널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안전하지 못하다 느끼는 순간이 30년 인생 중에 수면시간 빼면 대부분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가족에게서도.

가족들한테 죄가 있다고 말하고싶은게 아니다.

그냥 내가 안전함을 못느끼는 것이다.


사람을 늘 경계해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안전을 필요로 하지만 내 취약성을 드러낼 개방성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 절실히 부족하다는 상담사의 말을 들었다. 정신과의사와는 친밀감같은 것을 쌓지못한다.

나는 결국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데 또 실패를 한다. 돈을 주고 봐야하는 관계는 다 비슷한 느낌으로 신뢰가 쌓이기 어렵다는 생각이 무의식 저변에 깔려있었기때문에. 그냥 내가 정신과 의사해도되겠는데? 싶을 정도로 별 도움 안됐다.

이건 진짜다. 상처는 사랑으로 밖에 치유가 안된다.

결국 상처는 사랑의 부족으로부터 오는데 다들 사랑을 넘치게 느낄 수 있는건가.


행복해보이는 남들을 궁금해하면서 그러지 못하는 내가 거울 앞에 보여서 좌절하기를 수십만번은 해왔다.


 친밀감의 문제는 내 노력부족이 아니다. 내 탓은 맞는데 진짜 너무 많은 노력을 해도 두려움이 좀처럼 사라지지않았다. 겁이 안나는 척을 열심히 해도 얼굴을 경직하며 남들을 경계해도 혼자 있을 때 펑펑 울기를 수천번은 했을까.


 내 자신을 외롭게 하는 것은 나인데 도저히 무서워서 두려워서 나를 외롭지않게 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내가 세운 방어막이 나의 감옥이 되었다. 나를 숨막히게 하며 죽여가고 있었다.

안전하려고 세운 방어막이 나를 죽이고있는 줄도 나는 자각도 못했다.


다른이들이 나를 알면 도망가서 내가 또 지독하게 상처받는게 무서워서 숨고 도망치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내가 숨기면 대부분은 다들 속았다.


다들 속았다.


속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나를 당황도 하지않고 들킬 사람이 지독히 필요했다. 진짜 너무 아팠으니까. 아무도 이해못할 것 같았다. 다들 마음을 열라는 말을 한마디 해도 내가 마음을 열려고하면 부담스러운 표정이나 당황하려는 표정이 드러났다.


나는

'사람의 미세한 표정과 몸짓과 손짓을 금방 알아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보인다'는  편집증이 있다. 그런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고 잠깐 남들이 불편해한다고해서 그게 그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고서 그 사람을 내쳐버린다.

그게 그 사람은 결코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남들의 순수암을 알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그런 낌새가 보이면 금방 마음에 셔터를 내린다. 내가 거절당하는건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고 심장이 쥐어짜듯이 아파오니까. 심장이 자주 쥐어짜듯이 아파와서 참다가 참다가 편두통까지 통증이 타고 올라오면 그때는 타이레놀을 먹는다. 그러면 조금 괜찮다. 그렇게 통증약에 내성이 생겨서 생리할 때 1-2시간 단위로 통증약을 먹어야 생리통도 아프지않다. 공황이 온적은 오래되었지만 심하면 공황장애도 온다. 눈아 핑핑 돌면서 아무 생각도 못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남들을 또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더 나를 괴롭힌다.


'태어나지 말아야할 새끼가 태어나니까 이 모양이지'

하며 나는 내 자신에게 이보다도 더한 악담을 들려준다.


또 방어막을 세워서 살살살 미꾸라지처럼 내 치유를 도와주려는 사람에게서 도망간다.


아 내가 그들을 도망가게 했지. 누가 누구를 탓해

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씁쓸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오늘도 실패했다며 혼자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위로가 되는 것 같은데 실은 위로가 되지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음악이 마약이라는 말이 진짜 맞는게

어차피 음악을 들어도 나는 어차피 치유받지못한다.

마약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게 아니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에서 정재열은 낙타 그림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낙타는 낮에 내내 나무에 묶여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줄이 풀렸는데도 낮에 묶여있던 나무에서 벗어나지못하는 낙타를 자신에게 비유한다.


나는 정재열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도 모르는 친구도 모르는 전남자친구도 모르는 내

아픔을 알아줄 누군가 단한명이라도 필요했다.

그걸 나는 30년간이나 기다리고 있다. 치유가 되기를 늘 기다리고 있다. 30년을 훌쩍 뛰어넘고싶다.

3000년을 훌쩍 뛰어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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