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긴 시간에 걸쳐서 쓰여지는 책이 될 것이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ㅎㅎㅎㅎ
일단 나는 손자가 없지만 고모의 입장에서 쓴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고모가 조카에게 라는 타이틀은 딱히 돈이 될 것 같지않다(농담). 내가 준모의 엄마나 아빠나 할머니보다 조카를 더 사랑하지는 않을거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같이 있는 시간이 적다고 덜 사랑하는 일은 없을테다:) 세상은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미워한다는 말이 쉽게 나올만큼 사랑에는 각박하며 남사스럽고 저항감이 대단하다. 그런데 그런 저항감을 이길만큼 준모는 사랑 그자체인가보다. 사람들이 오해할만한 것이 나는 사람이나 아기를 엄청 좋아하는 타입의 에너지높은 인간유형은 아니다. 그저 조카가 온갖 사랑을 받는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나 그런지 조카가 매우 사랑스럽다. 할머니의 사랑하는 마음은 아마도 엄마 아빠에게서 받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풍미같은게 역사적으로 존재하지않았는가. 그리고 나는 엄마랑 가장 친한 친구니까 손주가 생겨서 추석에 조카가 놀러왔다가 간 다음에 마음의 공허라는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너무도 이해가 갔다. 이게 바로 이상형을 그리워하는 여인네의 뭐 그런 짝사랑같은거 아니겠는가 할머니의 손주짝사랑이 이미 예전부터 예정되어있었다.
일단 준모의 할머니는 준모를 사랑하는게 남다른데 모든 할머니들이 왜 안그러겠냐만은 진짜로 남다르다고 느낀 것은 준모의 할머니는 남자보는 눈이 굉장히 높으셔서 오타니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감각 젊은 할머니 되시겠다. 조카의 할머니 즉 우리 엄마는 자식들보다 오타니를 사랑하신다. 다른 어머니들이 자식들보다 임영웅을 좋아하는 느낌으로다가 오타니를 좋아한다. 준모가 태어나더니 순식간에 인생의 이상형이 오타니에서 준모로 변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했던가, 오타니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 대단한 그도 준모만큼은 아니라며...
(오타니에게 왠지 죄송하다..)
아무튼 준모는 오타니보다 사랑받는 남자가 되었다. 아무튼 이번 추석에 준모를 두번째로 봤다. 조카는 약간 우리한테서 나온 조카가 아니라 위에서 귀한 존재 내려줄게~하고 내려온 느낌이었다.(주관적)
안그런 아기가 어디있겠냐만은 준모는 역시 유니크하며 빛났고 남달랐다.
일단 우리 준모가 태어나고서 140일정도 지난 후기를 쓰자면 남달리 귀엽고 이렇게 사랑받는 아기는 흔하지않을 것이라는 직감이었다.
대단한 일이 없이 충분히 존재로 대단한 아기였다.
(우량아이다.)
세상에는 자신은 사랑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자기는 혼자라고 생각하는 영혼이 많이보인다.
나는 왜 사랑을 못받지? 나는 왜 혼자일까?하는
그런 길에 버려진 강아지 고양이들 축사에 갇혀서 언제 먹힐 날이 올지 기다리는 소들도 생각이 난다.
그런 모든 것에 연민을 가지는 할머니라 지나가는 나비와 하늘의 구름과 태양과 달의 아름다움을 아는 할머니라 그런지 그런 손주가 내려왔을까?
내가 어떻게 신이 하는 일을 이해할까.
아무도 모른다.
그나저나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만드는 아기는 정말 귀하지않은가? 모든 것이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기는 정말 귀하다.
MISIA ainokatachi를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