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관하여
“나 혈액형 무슨 형일거 같아?” 어릴 적엔 친구들에게 곧잘 저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편견 범벅인 질문을 던짐으로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성격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으니까. 공부에 치이고 친구들 틈에 치여 숨이 막힐 것만 같던 학창시절엔 저렇게 물으면 백이면 백, 전부 ‘A형’ 이라고 답했다. ‘소심하다’ 라는 편견이 붙은 그 혈액형. 실제로 내 혈액형이 A형이긴 했지만 난 그 정답이 담긴 대답을 들을 때마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스스로도 소심하고 어딘가 위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꼭 다른 사람 눈에도 그리 보인다고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그 후 숨을 조여오던 학교에서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익숙하던 친구들에게서도 관계의 눈치를 보던 내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 관계를 형성하고, 할말도 못하고 꾹꾹 삼켜 체할 것만 같던 내가 내 의견과 주장을 여러 사람에게 펼치기도 했고, 매번 미루기만 했던 계획들을 내가 마음만 먹으면 꼭 해내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기 시작했고, 화가 나면 그렇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현재 내 주변인들 중 나를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에게 또 우스갯소리로 혈액형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모두 각기 다른 대답을 하지만 신기하게 결코 ‘A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 혈액형이 A형임을 밝혀도 믿을 수 없다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로써 혈액형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느끼기도 하고, 내 성격이 실제로 많이 외향적으로 변했음을 느낀다. 그리고 매번 위축되어 있던 나는 그러한 변화가 참 기분이 좋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선 참 여러 지옥같은 일들이 많았지만.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똑같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세상 속을 유영하면서 이곳 저곳이 깎여 나가고 딱지가 앉아 다시 새살이 돋기를 반복하면 지속적인 한줄기 낙숫물에 결국 뚫리는 바위처럼 결국엔 변하고 만다.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변한다. 그 변화가 당신에게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미래의 당신이 그 변화로 조금은 당신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음 좋겠다. 내가 이토록 버텨내었구나, 그 긴 시간을 걸어왔구나, 참 오래도 왔구나 하면서. 그렇게 그 인생의 결을 느낄 수 있었음 좋겠다. 당신의 변화가 기분 좋은 변화가 되기를. 과거의 당신이 여기에 서서 미래의 당신에게 꾸준히 응원을 보낼 수 있었음 좋겠다. 언제든 돌아서도 똑같이 손을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