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원 Dec 04. 2019

스스로 삶의 선을 긋는다는 것.

우울증에 관하여


인스타그램 스토리 질문 창으로 내가 써주었으면 하는 글의 주제를 받았다. 그리고 그중 나는 슬프게도 자신의 삶을 직접 끝내는 것에 대한 주제들을 꽤 많이 받았다. 특히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하는 이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이 많았다. 그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였고, 내가 그 질문을 한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다 알 수 없어서 글로 쓰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올해 내가 겪었던 일들을 조심스레 풀며 그들에게 삶에 대한 도망보다는 상황에 대한 도망을 권하고 싶은 마음에 그에 대한 글을 적고 말았다. 2년 전 나도 그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몇 달을 지새운 적 있는 사람으로서.




올해 7월, 나는 순탄히 잘 흘러가고 있던 일상이 거대한 슬럼프에 부딪힌 적이 있다. 그것은 괜히 주기적으로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불안함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단 좀 더 타의적인 어떠한 사건을 겪게 되어서였다. 7월 말쯤 나는 한 작은 원룸을 구했다. 본가가 따로 있었지만, 집이 교통 소외지역에 위치한 탓에 출퇴근이 힘들어서 일하는 카페 근처로 여러 용도로 쓰기 위해 구했다. 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 로망이었던 자취를 그것도 꿈에 그리던 복층 집에서 할 수 있게 됨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었다. 드디어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벽에도 라이브 방송도 할 수 있는, 그러한 개인적인 공간이 생겼다며 좋아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족스럽게 시작한 나의 첫 자취는 불행히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자의가 아닌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

방에 들어가고 삼일 밤을 보낸 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섰는데 복도에서 알 수 없는 악취가 났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무언가가 소멸하는 냄새. 처음에 난 그 냄새의 원인이 옆 옆집 현관문 앞에 놓인 꽉 찬 쓰레기봉투 속에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그 냄새는 2주간 복도를 점령하듯 점점 심해졌고 나는 그때쯤 부산 여행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자취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엄마가 전화를 걸어 제지했다. 가봤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왜 그러냐는 나의 다그침에 엄마가 말했다. 2주간 악취가 계속 난다는 나의 말을 듣고 오빠가 오늘 자취방으로 향했는데, 건물 앞으로 응급차와 경찰차가 늘어서 있고 불길함에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보니 우리 방 바로 앞, 1미터 정도 되는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문을 마주한 바로 앞방. 그 방문 사방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고. 나는 그 전화를 끊고선 아무 대꾸도 없이 본가로 향했다.

삶의 마지막 선을 직접 스스로 그렸다고 했다. 나와 열 살도 차이 나지 않는 그 얼굴도 모르는 젊음이. 우울에게 삼켜진 거라고 했다. 그 삼켜진 이후 2주가 지났고, 2주간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온 그 가족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 젊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사실은 쉬쉬하려는 관리 소장의 입을 꼬드긴 내게 방을 소개해 준 부동산 아저씨에게로 전달되어 내게도 들어왔다. 며칠을 속이 이상해 제대로 숨 쉬기가 힘들었다. 메슥거리고 울렁거렸다. 그 이후엔 이유 모를 무기력이 나를 덮쳤다. 그 젊음에게 찾아온 것은 우울증이랬다. 나를 2년 전 지독히도 삶의 절벽으로 몰았던 그것이 그 젊음을 기어코 삼켰다고 했다. 나는 그 얇은 철판 하나도 문이라고, 그것에 막혀 2주 동안이나 아무렇지 않게 그 앞을 지나다녔다. 불과 5미터 안에 그 우울에게 삼켜진 안쓰러움이 있었는데, 알지 못한다는 어찌하지 못하는 사실로 그 속에서 영화를 보고 웃기도 하고 전화통화에 라이브 방송까지 했었다.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이지만.

2주 만에 방을 빼는데도 집주인은 이해했다.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난 그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방을 뺀 이후에도 내 무기력은 여전했다.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무언가가 탐이 나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수시로 느끼며 그 젊음의 우울을 생각했다. 무엇이 그토록.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기에. 또 그 우울에게 삼켜진 젊음을 직접 떠나보낸 그 가족들의 심경을 0.1 그램 헤아려 보는 것에도 하루 종일 삶이 무거워 한숨을 숨 쉬듯 내뱉었다. 얼굴도 모르는 젊음과의 이별로 나는 마음을 다시 다잡는데 시간을 많이 썼고, 내 일과 일상을 돌려놓는 게 힘이 들어 상담 센터를 방문해야 하나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어떤 젊음의 삶의 끝을 잠시 느낀 것만으로도. 그런데 복수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 한다니.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얼굴도 모르는 이의 이별로도 나는 속이 뒤집혀 한동안 일상을 잃었는데, 하물며 본인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처참히 무너질까. 그 슬픔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는 있을까.



차라리 그들로부터 도망치라, 안되면 학교든 집이든 일상을 내던져서라도 그 상황에서 도망치라고. 삶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라고. 이 말 밖엔 난 할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나는 올해 2번의 무기력을 더 느꼈다. 내 학창 시절 이어폰 속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던 내 또래의 두 아름다운 이들을. 공허함 속에 또 젊음의 끝을 보았다. 올해는 유난히 그렇다. 더 이상 삶의 이면의 질감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지 않다. 그로 인한 무기력과의 만남도 더는 싫다. 부디 그 마음으로 좀 더 울어서 더더 그 응어리를 녹여서 그 힘으로 살아졌으면. 언젠간 당신의 그 아픔만큼의 또 다른 아픔을 그대로 돌려받을 그들의 미래를 직접 보기 위해서라도. 직접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복수이지, 내가 보지 못한 그들의 아픔은 복수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사람은 쉬이 바뀌진 않지만 변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