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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물고기'를 애써 찾을 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 남긴 묵직한 여운

by 스토리캐처

제멋대로 이름짓고 규정하

섣부른 의미 부여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결코 내용이 쉽지 않아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야기가 재미 있어서 손에서 쉽게 놓을 수도 없었다. 그 덕분에 다른 책처럼 오랫동안 나눠 읽지 않고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끝장을 다 봤다.


한동안 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되서 일단 브런치 저장 글 1탄을 써 놓고, 2탄을 또 쓰고, 이제는 더 지나면 아예 이 책에 대한 글을 안 내게 될 것 같아 서둘러 매듭짓는 심정으로 써 본다.


비교적 잘 읽히는 것 대비 그 안에 담긴 메세지가 꽤나 묵직하다. 책을 읽기 전 몇 시간동안 교보문고앱의 모든 리뷰를 다 눌러 보고, 독자가 뽑은 한 줄 문장을 끝까지 보고, 브런치 리뷰들도 찾아 읽고 나서 이 책을 마주했더니 내 생각 이상으로 좋은 점이 있었다.


이미 읽고 소감을 남긴 분들의 한 줄 한 줄의 이야기도 공감되고, 나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다른 선배 독자들과 같이 읽는 기분이 되서 책 읽는 과정에 한 층 더 재미가 생겼다.


이 책은 비슷한 다른 책보다 더 널리 읽혀질 수 있는 특장점이 있었는데, 술술 소설을 읽듯이 그저 마음 놓고 따라가면 됐기 때문이다. 작가의 모든 서술이 변인듯 강해서 계속 판단을 하면서 들어야 한다든지 혹은 듣기 싫은 자기 주장 방식이 아니고, '있잖아, 사실 이런 상황인데 말이야. 들어봐줘. 판단은 바로 당신 - 독자의 몫이야'이라는 서술 방식이어서 특히 읽는 마음이 더 편했다.


언니는 학교에서 나쁜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힘듦을 내내 겪는 상황 속에 10대를 보낸다. 누구도 돕지 않고 도와달라고 할 수 없는 자포자기 심정인데, 또 그렇게 대단한 절망적인 상황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덤덤하게 들려주니 내 주변 어디나 지척에 널려있다고 봐도 무방한 이런 흔한 상황들이 떠올랐고, 동시에 무기력한 슬픔도 더 크게 밀려왔다.


이유없이 괴로움을 겪는 건 사람 뿐만은 아니었다. '물고기'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는 '종'을 자신이 최초로 발견했다며 온 일생을 바쳐 물에 사는 희귀한 모양의 바다 생물을 잡아대고 제 멋대로 이름을 붙이는 존경받는 학자가 있었다.


그 학자의 삶을 우연히 접했고,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쫒다가 의외의 단서를 발견하고 이미 사후인 그에 대한 평판과 동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성과를 이뤘다.


학자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영향력이 높아지는 만큼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연구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 그 일을 하고, 더 멀리 더 먼 곳까지 채집을 떠나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채 고통받는 건 '물 안을 유영하며 자유롭게 살던 소중한 생명체'였다.


무차별적으로 바다생물을 죽음으로 몰고갔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우열을 가르는 우성 유전자, 열성 유전자론을 주장하며 우생학에 대해 목소리 높인 학자이기도 해서, 그 시대의 불행한 피해자들도 등장한다.



독약을 물에 뿌려 무차별적으로 바다생물을 수집하고 이름을 지어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런 몹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자손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해를 줄 것이 분명하니, 의당 임신을 할 권리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와 감금되고, 차가운 공간에서 영문도 모른채 불임시술을 강제로 시행당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성향의 사람인데 그런 시대적 과오를 겪게 된 피해자를 어렵게 찾아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묻고 글로 들려준다.


여러분!
와 대박 사건!

아니 글쎄
세상에 제가 처음 공개하는
물고기라는 종이 있어요.

생전 처음 보시죠?

제가 벌써 이렇게나
많이 발견했어요.

저 진짜 대단하죠?
이번에 이런 모양은
제가 세계 최초로
처음 발견했네요.

아주 독특하고
특이하게 생긴 희귀한 물고기니
이 것의 이름은
제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저자는 본인이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라는 것을 처음부터 그 단어를 사용해서 선언하듯 들려주지 않았다. 독자가 앞에 마주 앉아있는 가운데, 각 상황을 담백하게 들려주는 말 잘 하는 분이 앞에 앉아서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그 때 어쩌다 자신을 우연히 알게 됐는지 중간 중간 자신의 삶 속 장면 장면들을 풀어서 마음으로 공감되게 느낌으로 들려준다.


각자 자신의 행복을 자유롭게 찾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지만, 우월한 유전자 좋은 유전자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편견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대목에서 더 많이 뜨끔하고 미안하고 같이 아팠다.


한 권 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총과 칼을 들지 않고도, 이런 글로도 세상에 아주 큰 울림을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글이자 저널리즘의 거대한 힘이라고 느꼈다.


아래 글은 책을 읽고 난 직후에만 꺼낼 수 있는 감동을 담고 있어서 지금 봤을 때 조금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냥 그대로 소개해 본다.




한 주 시작부터 대의가 담긴 책 한 권을 읽었더니 기분이 좋다.


분명 오늘 즈음엔 피곤해 할 상태가 됐어야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바다가 끊임없이 파도치며 정화되는 것처럼, 내 답답한 머릿속도 한 생각을 오래 안고 있을 틈 없이 계속 적했다.


평소라면 익숙하지 않은 상쾌한 공기를 마침 책을 열어서 원없이 잔뜩 공급받는 기분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이 몰고 온 큰 울림


시작부터 핵심 요점만 간결하게 다뤘다면 읽고 나서 내 마음에 이 정도로 오래 파도가 일렁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기획한 덕분에, 호기심을 해결하는 재미를 줬다. 한 번에 끝까지 읽으면 영화 한 편을 개운하게 본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개인 고백이 곁들여진 그 것이 알고싶다, PD수첩 같은 논픽션 소재인데, 소심한 초보 탐정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으로 한 발 한 발 기자 출신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표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이 앞부분이 재미없다는 혹평도 있는데, 뭐가 잘 안 되고 힘들다는 이야기니 그럴 만 하다. 책 뒷 부분에 거듭되는 반전카드를 꺼내서 재미 총량을 온전히 할애한 역대급 대미였다.



예습을 하라고 해도 이렇게는 못 할 텐데, 책을 읽기 전 모바일 교보문고 북카드, 한 문장, 후기를 모두 진지하게 읽었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자신만의 이야기와 느낌을 후기 코너에 기꺼이 꺼내주신 분들은 모두 나의 스승님이자 선배님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전율이 일었지만, 다 읽고 나서도 한 동안 뭐라고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 안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이런 저런 그런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의 꼬리들을 마주했다.


나라면? 책 속에서 길어올린 가장 큰 비극을 나에게 대입해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만약, 내 엄마가 저 시대에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아서 어느 가방 끈 긴 대학 학장 출신의 집요한 분류학자 때문에 열등한 유전자로 규정지어졌다면? 마치 나치 수용소 같은 차디찬 건물로 끌려가 억울하게 배에 세로로 긴 리본 훈장 흉터를 남기는 불임수술을 당했다면?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겠지.


자유의지가 아닌 강요와 압박 그 모든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는 나라면, 그 조치의 대상이 되었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의 잔혹사를 마주한 나는 앞으로 기존의 내 몹쓸 선입견들을 무사히 흘려보낼 수 있을까?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 보려고 하지도 않고, 핵심을 알지 못한 상태로 명성을 얻는 유명인사의 이름과 이 순간 힙해보이는 단어만 그럴 듯하게 인용하는 일은 또 어떤가?


자칫하면 성급하게 판단해 급하다며 쉽게 저질러 버리는 실수가 될 수 있어서, 좀 더 여러 번 정말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단히 휘젖지 않으면 바닥으로 가라앉길 좋아하는 내 생각도 좀 더 숙성시키며 단 하나의 좁은 시선을 벗어나 제약없이 풍부하게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길러 봐야겠다.


다양해서
더 아름답다

나와 다르다고
문제라며
뽑아내고
잘라 내 버리지 말고

부디
아름답게
잘 어우러지길

와!
브런치 스토리
메인 보다가
놀랐어요!

제가
구독자 급등 작가가
되었네요.

구독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


교보문고 책 순위 급상승에 약간 보태기해드린 걸로 8/19 기준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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