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건 나지만 상대는 잘못이 없을 수도 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말도 못하게 마음이 어지럽겠지만, 왜 함부로 믿었는가.
쉽게 믿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직접 겪어보는 것만큼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이 없다.
정확하게는 배신당했다는 전지적 1인칭 나 시점이고, 주관적인 피해자 시점의 서술이다. 혼자 철썩 같이 내 맘대로 나 좋을 대로 믿었다가는 나중에서야 그 기대가 애초부터 적절하지 못한 것을 확인한 순간의 표현이다.
브런치에 애정을 가졌던 분이 어제 응원하기 에 대해 대 실망하셨다는 글을 보고 지난 날 내 감정들을 떠올랐다.
내가 어딘가에 애정을 가지고 진심을 다했다고 해서, 상대가 그 걸 다 알아차릴 리 당연히 없고, 무조건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충실했을 뿐이다. 너무 기대하지도 믿지도 않고, 각자의 처지와 상황이 있을테니 안전한 거리 두기, 안전거리 지키기를 배웠다.
당연히 서운함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내 맘같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아마 구 할 구 푼 쯤?
어린 시절에는 이럴 때 무조건 상대 탓을 한다. 원망하고 울고 불고 떼를 쓴다. 시간이 지나서 여러 경험을 하고 보고 듣고 자라고 나면 달라져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럴 수 있고, 그런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아프면서 배우고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 와중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두 가지 중 하나다.
나와 결이 맞아 의외로 친구가 되거나 또는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매력이 최대치라면 훅 다가와서 내 마음과 지갑을 제대로 열려고 작정하고 웃으며 다가온 사람이다.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도 겪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선의로 보이는 첫 순간에도 잠시 고민한다. 오래 두고 지켜 본다. 나와 여러가지로 결이 맞고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면 대화를 하고 속내를 나눈다. 그렇게 편하고 믿어도 되는 뭐든 도움을 주고 싶고 뭘 해도 안 아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모두가 내 친구가 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온 세상이 나를 내 내면과 진심을 알아주고 좋아할 수도 없고, 내 욕구와 마음을 미리 잘 헤아려 알아서 나에게 맞춰주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