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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서 나와 걷고 보고 느껴야할 때

오늘 지하철에서 본 아이와 엄마 모습이 아른거린다.

by 스토리캐처

지하철 문에 몸이 낀 채로

수 초가 지났다.


곧 지하철 문이 다시 열리겠지하고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다. 그렇게 내가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사이, 어느 행동이 빠른 분이 지하철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 분이 양쪽 문 반대 방향으로 두 손으로 잡고 문을 힘껏 열었더니 확 열린다.


이내 몸이 끼어서 당황스러움과 언짢음 가득했던 분이 지하철 안쪽으로 걸어들어오는데, 그 분 뒤에는 손을 잡고 들어오는 딸이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딸이 따라 들어오는 그 몇 초가 천천히 흘렀다. 다른 칸으로 빠르게 이동하셔서 모녀를 본 건 10초 남짓이었다. 긴장되고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되었다가 빠르게 해결됐다.


딸은 엄마와 비슷한 키였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자녀를 앞에서 이끌어야 하는데, 앞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은 급했을까.


지하철 문이 닫힌다는 안내는 분명히 들었을테지만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얼른 몸을 움직였을 거다. 하지만 혼자 움직이는 건 아니니 움직이는 속도는 그 마음을 못 따라갔을 것이고, 끼자마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되서 얼굴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왜 다들 보고만 있어?

가서
빨리 문을 열어야지!


성큼성큼 걸어 가서 문을 확 제껴 열고서 문에 끼인 분이 안전하게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용감한 시민의 말이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걸 오늘 처음 배웠다.


내 눈 앞에 얼마나 오래 있었든 짧게 스치고 지나갔든 상관없이 어떤 장면은 꽤 두고 두고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오늘 본 이 광경이 그랬다.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요즘 부쩍 긴 글이 눈에 안 들어오고 안 읽힌다. 빨리 넘겨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글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긴 글을 차분히 읽을 정도로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동료가 급하게 떠난 빈 자리가 이렇게나 크다. 확실한 건 그 분은 스스로 잘 한 게 없다고 미안해했지만, 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를 해주신 것이었다. 1인분 몫 이상이었다. 고마운 동료의 자리는 곁에 당연한 듯 있을 때보다 떠나고 없을 때 존재감의 크기가 더 커지는 것 같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부디 서로 좋은 사이였길.


이번 주말에는
꼭 책 읽으면서
내 마음 속 긴장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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