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을 알고도 편하게 받을 수 없을 때

하트시그널 4 민규와 지영의 관계

by 스토리캐처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불편한 상황 이어졌다.


아쉽게도 마음껏 썸을 타라며 한 달간 사랑을 관찰하기로 실험하는 공간이 참가자들에게는 너무 큰 제약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마음껏 썸을 타기는 커녕 서로 너무 친해져서 티날까 부담될까 사이나빠질까 걱정하다 못해 피가 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마음 끌리는대로 가기엔 민규는 큰 그림을 보는 전략가라는 특성이 크게 작용했고, 직업도 있는 사람들이니 신중하고 이성적이어서 현실성은 있었다.





다만, 짝짓기 프로그램에 시청자가 기대하는 뺏고 뺏기는 움직이는 사랑 따위는 나오지 않고,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고민만 하다 결국 기회를 놓쳐버리고 아쉬워하는 우리의 현실과 꼭 닮아서 막장 드라마 시청률이 그저 부러운 상황이 되었다.



사랑을 표현하기가 걱정되고, 부담될까봐 말도 못하고 말을 참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내 심장에 매우 위험한 활이라서 방패로 계속 막고 미안해한다니 마음 불편해서 어떻게 서로 웃으면서 볼 수 있을까?

영화인가 아니면 작가가 모두 다 계산하고 짠 판에 연기만 하는 건가 리얼리티 맞아? 싶을 정도의 브로맨스가 이런 프로그램에 등장한다니 이 또한 놀라웠다.


형은 매일 밤 속마음 이야기하기 더 편했고, 형에게 선택받아야 하거나 선택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헤어질 일 없이 계속 볼 수 있는 사이니까 형과 좋은 관계가 우선이니까 형이 행복하길 바라고, 내가 좋아하는 형의 마음이 더 소중했다.


형 마음은 다 잘 받아줄 수 있는데, 누군가의 마음들은 받아줄 수 없는 상황 속 괴롭던 고통의 시간들이 드디어 끝났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되서 끝까지 보긴 했는데, 예쁜 화면 속에서 마음 아픈 감정들이 마구 쏟아져 보여서 정말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너무 깃털처럼 가벼운 프로그램도 싫지만, 감정적으로 힘든 모습들은 채워지기보다는 뭔가 내 깊은 공감력이 편하게 볼 수 없이 오가는 감정들이 어긋나고 안타까운 상황에 더 많이 소진되고 소모되서 지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이런 프로그램이 예전보다 현실성과 진정성을 더하다보니 그럴테고, 한 달 안에 한 사람만 진득하게 만나고 이야기해도 부족할 시간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마치 불가능한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좋아하는 상대의 그 마음을 못 받아주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고 눈도 못 마주치고, 죄인된 기분이 들고 마음 가라앉는 장면들 보기가 애처롭다.


가볍고 즐겁게, 깊은 생각없이 그저 놀면 되는 상황이라서 웃고 먹고 여행가서 사진 찍고 놀기만 하면 되지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인기가 많든 적든 꼭 선택지를 넓히는 장점이 있거나 즐거운 객관식 시험은 아닌 걸로.


방송 시간이 길지 않아서 누가 최종 커플이 될지 헷갈리고 궁금해 할 만큼 혼란을 느낄 만큼의 일상 단서를 많이 보여줄 수도 없었으니, 매주 시그널 문자를 보낸 사람을 추리하라고 하는 패널 게임도 반전이 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직업 면에서 의사는 정말 개인 시간이 없어서 한창 연애하셔야 할 때인데 마음껏 연애하기 좋은 직업처럼 보이지는 않아 무척 안쓰러웠다.


좋은 것만 보면 좋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든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가다 보는 병원 의사분들이 되게 바쁘고 피곤해보이기도 해서 그렇다. 잠을 잘 못 자고 휴식이 없어서 그럴 거다.


의대를 가기만 하면 인생 성공 보장, 다 잘 될 걸로 생각하던 10대 수능 시절 거쳐왔다면 왜 이 말을 하는지 이해될 텐데, 그 직업으로 안 살아봤으면 막연히 다들 알아주는 직업이라서,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각자 힘들지만 말로 다 못하는 사정들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료사이다 루시] 볼수록 좋아지는 동료를 만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