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할머니는 90이 넘으셨었는데, 거동이 불편한 시할아버지를 지킬 겸 정신이 또렷한 상태로 요양원에 함께 가셨다.
옆 침대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집에 간다며 실랑이를 하는 것을 매일 밤 지켜봤고, 여러 사건들을 보고 듣고 하시다가 어느 날 그 곳에 더 이상 못 지내겠다고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 하셨다.
요양원이 감옥처럼 느껴지니 탈출하고 싶은 시할머니가 보고 전해준 이야기라서 과장이 있을 수는 있는데, 시할머니 시선에서 느끼기에는 치매 할머니가 매일 밤 실랑이하다 맞아서 멍이 들었다고 보셨던 것 같다.
죄인처럼 느끼며 오가는 자녀들은 항상 그 곳에서 돌봐주시는 선생님들께 잘 봐 달라 감사하다고 돈이든 선물이든 드려야 도리를 다한 것 같아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다.
어느 날 시할머니 없이 혼자 계시던 시할아버지를 뵈러 간 자녀분들이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냥 보면 잘 안 보이는 저 깊은 곳에 수술 후 꿰맨 자국이 있었는데, 문제는 왜 그런 조치를 하고도 보호자에게 아무 설명이 없었냐는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더 나쁜 해코지가 있을까봐 더 따져 묻지 못하고 다른 요양원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그 사건은 일단락됐다. 시할아버지가 대답하실 수 있는 문제도 아닐테고, 당시 할 수 있는 한 최선이 거기까지였다.
거동을 못하는 분을 계단이 있는 구옥에 모셔오면 돌볼 책임을 크게 느끼는 분은 매일 직장도 못다니게 되고, 혼자 아무 것도 못하시니 온 가족의 일상이 마비된다. 그 모든 불편을 생각하면, 요양원이 대안인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사실 믿고 맡기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목에 음식이 걸리면 돌아가실 위험이 있어서 요양원에서는 아무 음식도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안내문을 부착해둔다.
하지만, 우리끼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죄스러워서 자녀는 굳이 싸와서 건네며 꼭 드시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코로나 19 집단감염 예방차 요양원 병실 안으로 가서 면회하는 것이 제한 되었을 때, 나는 잠시 짧은 면회를 병원 입구 쪽에서 하고 있었는데 어떤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전화담당자가 보호자에게)
네네, 어르신께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요양사님이 전화 담당자에게)
어르신 그거 못 드세요!
(전화 담당자가 요양사님에게)
그냥 버려요!
불가능한 것을 드시다가 목이 막혀서 돌아가시면 누구 책임인가?병원은 할 수 있는 한 안전한 것만 하는 편이 좋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할머니가 탈출하셨던 요양원은 나중에 원장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근처를 오랫만에 지날 일이 있어 보니 요양원이 있던 자리는 다른 상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할머니는 본인이 끊지 못하는 담배를 배운 이유가 본인이 어리고 멋 모를 때 누워만 계시던 시어머니 요양을 직접하느라 그랬다고 하셨는데, 본인이 괴로움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것처럼 큰 며느리의 돌봄 속에 집에서 조용히 어느 날 하늘로 가셨다.
어쩌다보니 내 엄마 아빠, 시할머니 시할아버지의 요양원을 면회 겸 보호자겸 자주 오가며 볼 수 있었다. 죄스러운 마음이라는 건 내 엄마를 들여보내기 전부터 시작되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만 미안하고 미안한 건 내 마음이 그런 거니 그 또한 어찌할 방법이 없다. 모든 자녀가 같은 마음인 것도 아니고,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수 많은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고 어떤 것은 통과하고 어떤 것들은 남는다.
호상이라는 말도 그냥 위로겸 하는 말이고, 황망하게 급히 가시는 길일 뿐, 어느 날 조용히 눈 감는 건 그 누구에게도 기쁜 죽음이나 이별 같지는 않다.
사는 동안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라는 말이 계속 내 곁을 맴도는데, 사랑한다면 당장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로 이해했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오늘 지금 바로 하자며,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것만 빼고 최대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은 당황스럽거나 반갑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 떼 먹힌 돈, 빚 갚으라고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분은 아직 없고, 오랫동안 좋은 인연이신 분이 지난 주 만나러 친히 와 주셨다.
그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5개월이나 지나서 알다니 죄송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슬픔이 증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간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요양원에 가지 않으셨다면, 조금 더 나아지셨을 수도 있는데 하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도 아주 잘 안다.
지나고 할 수 있는 것이 눈물 속 추억 떠올리기 뿐이라는 것도, 참으로 무겁고 무거워서 아무나 붙잡고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어쩌다보니 많은 어른들의 투병 기간을 지켜보고, 장례를 치르고 난 처지가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 내가 무슨 부축을 했겠느냐만,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고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할머니와 늘 병원, 약국을 같이 다녔었다.
빨리 철이 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 그렇게 쭉 살다보니 부모님 돌보는 친구들, 부모님과 이별한 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경험들이 많아졌다.
고통 죽음 우울함도 인생에 없을 수는 없으니까, 웃을 수 있을 때 농담이라도 하면서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걷고 뛰며 최대한 잘 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