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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없는 커피는 다른 것으로 채우지

음료를 책읽듯 음미하는 가을

by 스토리캐처

아주 오랫만에

기재기를 켜듯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대충 심각하지 않게 느슨한 분위기에서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들고 카페 나들이를 갔어요.

옆에는 논리적인 T의 성격일 것이 분명해 목소리에서도 단호함이 뚝뚝 배어 나오는 다부진 심리 상담 진단가와 그 분의 맞은 편에는 마스크를 쓰고 집중하는 고민 많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경청하는 분이 앉아 계셨어요.


둘 사이에는 그 누구의 방해나 소음도 뚫고 들어갈 틈이 없게, 무언가를 차분히 쓰고 지난 날의 행동을 정리하며 원인과 해결책을 진단하는 보호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았죠. 심오한 둘 만의 우주를 빚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거대한 아우라와 함께 몇 시간이고 이어질 기세였고, 실제로 제가 네 시간 정도 곁에 머무는 동안 두 분의 대화는 계속 그 곳을 채우고 있었어요.


집 근처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별다방은 주말이면 재무컨설팅 하러 먼 길 달려오신 전문가 분도 보이고, 보험 상담이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답이 없을 가정사와 하소연 등 끝없는 사연들이 굽이 굽이 흐릅니다.


고고하게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분들, 다부진 마음으로 오늘 하루는 공부로 채우리라 작정한 분들은 몇 자리를 차지해 두고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해 두기도 하고, 잠시 머물다 떠날 저 같은 손님과는 아예 앉은 자세부터 다릅니다.


적당한 카페 소음은 숨막히는 적막 속에 작음 움직임조차 신경쓰이는 여느 도서관보다 때로는 책에 풍덩 빠져들기 좋은 환경이라 어떤 날은 맛은 없지만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러 발걸음을 옮깁니다.


블론드 원두를 고르고, 원래 생각도 없던 커피에 곁들일 빵도 하나 골라봅니다. 그게 뭐라고, 그 깟 별 하나를 더 받겠다고 3000원 이상 결제 기준에 연연하며 시간을 쓰고, 어렵게 결제를 했더니 또 설문조사를 할 거냐고 별 하나를 주겠다고 합니다. 매장은 언제나 친절로 가득해서 별 다섯 매우 만족을 연달아 체크하고, 약속된 보상으로 하나의 별을 더 채웁니다.


별을 세 개 줄 테니 시즌음료를 지금 당장 먹어보라고 하는 뻔한 수에 또 이러냐며 반복에 익숙하지만 또 마지못해 순순히 응하고, 그 곳의 보도자료에는 시즌 음료가 누적 몇 만잔 판매를 기록했다며 경쾌한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확실히 전보다 덜 가지만, 생일선물 선호도, 위시리스트를 묻는 친구에게 여전히 그 곳 금액권이 가장 좋다고 순순히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돈의 흐름으로 보길 좋아하는 반려인은 이런 식으로 잔액을 채워두면 그 회사가 이자수익이 얼마나 큰지 아냐고, 생각도 안해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 할 것 없이 페이를 도입해서 충전해서 사용하라고 열심히 유도하는 이유가 있겠네 싶어요.


그래도 따지고 보면 별로 큰 손해는 아니고, 할인 프로모션을 하는 최소한의 노력 정도를 기울이니 기꺼이 따라주는 편입니다.


크리스마스 원두 시음 후기 : 끝 맛으로 산미가 산타클로스마냥 달려오네

메가커피는 진짜 몇 번을 먹어도 이건 원두를 누가 고르고 맛을 보기나 하고 파는 건가 싶은 맛인데, 여기도 별다방 쿠폰마냥 여기 저기서 받게 되서 맛없어도 가고 또 가는 중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익숙해질 수 없는 맛 없는 음료의 카페라도 이렇게 자주 가면 메가 커피본사는 '만족하고 맛있어서 반복구매하는 것으로 대단히 착각할텐데, 그럼 원두를 하던대로 고민없이 대충 공수할텐데' 하면서도 메가커피를 홀짝이며 마십니다.


맛없는 커피 맛집이라며 더 안 갈 약속은 못하겠고, 읽고 싶은 걸을 읽고 머무는 환경은 매일 바꾸는 걸 선호하고, 쿠폰을 덥썩 주면 차마 버리진 못하고 누굴 주긴 좀 그러니, 맛 없네 평가하고 투덜대는 건 제 마음이고,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대로 또 가고싶은대로 정처없이 다니도록 할게요.


감수성이 마른 나뭇잎 같아서 말랑말랑해지고 싶어 집어든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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