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과 음력
연말에서 이듬해 초까지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기가 오가는 시기인데, 그냥 ‘새해’ 또는 ‘2020년’이라고만 말하거나 적으면 괜찮을 것을 ‘경자년(庚子年)’, ‘흰색 쥐의 해’라고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
생각해보자. 2020년 1월 1일에 경자년이 밝은 것일까? 그 날이 속칭 흰색 쥐의 해가 시작되는 첫날인 것일까? 아니다. 천만에 만만에. 경자년은 2020년 1월 25일에 시작되었다. 2020년 1월 1일이 아니고. 그럼 경자년은 2020년의 1월 1일이 아니라 왜 1월 25일에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는 양력(陽曆)과 음력(陰曆)이 있다.
양력은 태양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고 태양력(太陽曆), 일력(日曆)이라고도 한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었고 태음력(太陰曆), 월력(月曆)이라고도 한다.
양력은 아라비아 숫자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연도를 매겨나간다. 2018년, 2019년 그리고 2020년의 순으로 말이다.
그런데 음력은 그렇게 숫자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해서 경신임계(庚申壬癸)로 끝나는 10간(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시작해서 신유술해(辛酉戌亥)로 끝나는 12지(支)를 조합해서 그해의 명칭을 정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의 임진(壬辰), 을사늑약의 을사(乙巳), 기미독립만세의 기미(己未)가 모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10간과 12지를 조합하면 모두 60가지가 되는데 이것이 ‘60 갑자(甲子)’다. 즉 음력은 이 60 갑자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 60 갑자가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다시 경자년 얘기로 돌아가자. 앞에서 말했듯이 ‘경자년’이라는 것은 음력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양력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경자년은 음력으로 따져서 새해 첫 날인 1월 1일 즉 <설날>이 되어야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경자년은 양력으로 2020년 1월 25일인 <설날>에 시작되는 것이다. 2020년 1월 1일이 아니다. 즉 양력 <2020년 1월 25일>이 음력 <경자년 1월 1일>이니까, 경자년이 시작되는 설날 부근에 가서야 ‘경자년’, ‘흰색 쥐의 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양력 1월 1일에 즈음하여 ‘경자년’, ‘흰색 쥐의 해’를 말할 것은 아닌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설날이 무슨 날인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12월 25일 성탄절을 산타 할아버지 생신인 것으로 아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처럼 설날을 ‘세배하고 세뱃돈 받는 날’, ‘떡국 먹는 날’, ‘한복 입는 날’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설날, 음력 1월 1일, 음력으로 새해 첫날이다. 그래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 날에 새로운 한 해가 복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웃어른께 새해 인사로 전통적 인사법인 절을 한다. 그게 바로 세배(歲拜)이다.
설마 싶어서 한 가지 덧붙인다. 2020년 1월 1일부터 1월 24일 사이에 태어난 아기에게 “2020년에 태어났으니까 너는 쥐띠야.”라고 말해주면 안 된다. 띠는 음력으로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자년이 시작되는 2020년 1월 25일(음력 1월 1일, 설날) 이후에 태어난 아기가 쥐띠인 것이고, 2020년 1월 25일 전에 태어난 아기는 기해년(己亥年)에 태어난 돼지띠이다. 아직 경자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 말해주면 돼지띠인 그 아기는 평생 자기가 쥐띠인 줄로 알고 살게 아닌가 말이다. 참고로 2020년 1월 1일은 음력으로 따졌을 때 기해년 12월 7일이다.
2021년도 마찬가지다. 경자년 다음 해인 신축년(辛丑年) 소띠해의 첫 날은 양력 2021년 2월 12일이다. 즉 음력 신축년 첫 날인 설날은 양력으로 2021년 2월 12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2021년 1월 1일 즈음에 '신축년이 밝아왔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 말도 안되는 일이 또 일어날 것이다. 언론에서부터 그렇게 한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2021년 1월 1일부터 설날 전날인 2021년 2월 11일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신축년 소띠가 아니라 경자년 쥐띠다. 띠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