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지우면서

언젠가는 '어머니'를 지우게 되겠지만

카카오톡에 새로운 친구가 떴다.

새로운 친구 이름은 <어머니>.


어머니가 카카오톡의 새로운 친구로 떴다...

어머니가...


어머니 가신지 4년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새로운 친구로 떴다...




어머니 가신 후 전화기에 있는 어머니 전화번호를 그대로 두었다.

전화번호든 기억이든 '지운다'는 게 슬펐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어머니 전화번호를 받은 사람이 없었나 보다.

이제 누군가가 그 번호를 받았고

그가 카카오톡 연결을 하면서

내 카카오톡에 어머니가 새 친구로 뜬 것이다.


어머니 전화번호를 전화기에서 지울 때가 된 것이다...


어머니 전화번호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


'삭제'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내 전화기에서 '어머니 핸드폰'은 더 이상 검색되지 않는다...




그동안 이승에서 어머니로 이어주던 끈이 사라졌다.

이 전화번호로

"누구로?"

"성시깁니다."

"아, 성시기라? 잘 있나? 모도 잘 있재?"

로 시작하던 대화가 끊어진 지 벌써 4년이나 되었지만

그런 대화를 연결해주던 도구마저 사라진다는 것은 역시나 서운한 일이다.


자주 만화영화 <코코>를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저승에 머물게 되고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날에 이승으로 온다는,

그리고 이승에서 아무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때 그 영혼은 소멸하게 된다는

멕시코 사람들 이야기.


고등학생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가련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다.>

그때는 몰랐다.

잊혀진다는 것의 무게를. 

 

아직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도 가고 나면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거고

그러면 그때는 어머니도 그야말로 '소멸'하는 것일 게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에 그런 가사가 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머니와 이별하며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 이런 게 보이는 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