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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어렵고 우리말도 어렵고

미국 들여다보기 (35)

미국에 산 지 10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날에 있었던 일이다. 길에서 만난 늙수그레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What time do you go?” 이 질문을 받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언제 가느냐고요? 어딜 가는데요? 제가 언제 가는지 왜 물어보시는 거죠?’


그 남자가 다시 말했다. “What time do you go?” 이번에는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왼손 팔목 등을 짚으면서 물었다. ‘아니 저 동작은?’ 그랬다. 지금 몇 시인지를 물어온 것이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시각을 물어볼 때에는 What time is it now?라고 물어보지만, 다르게 물어보기도 한다는 그 말. What time do you have?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거 참…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들었던 그 말이 그 순간에 생각나다니….


손목시계를 본 후 대답했다. “2시 50분입니다.” 그랬더니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3시 10분 전…” 아… 맞아… 저렇게 말하는 법도 배웠지. 10분 전 3시(ten to/before three), 10분 후 3시(ten past/after three). 다시 잠깐 중학생 시절로 돌아갔다.


영어? 쉽지 않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우리말은 쉬운가? 그런가?


죽다, 가다, 돌아가다, 고인이 되다, 임종을 맞이하다, 영면하다, 눈을 감다, 뒈지다, 사망하다, 서거하다, 별세하다, 삶을 마감하다, 생을 마감하다, 세상을 뜨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버리다, 저세상으로 가다, 저승으로 가다, 하늘나라로 가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다, 타계하다, 작고하다, 하직하다, 운명하다, 눈을 감다, 숨을 거두다, 숨이 멎다, 숨지다, 숨이 끊어지다, 세상을 뜨다, 세상을 떠나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하직하다, 아주 가다, 황천길로 가다, 북망산으로 가다, 가고 오지 못할 곳으로 가다, 요단강을 건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유명을 달리하다, 선종, 소천, 입적.


쓰이는 곳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모두는 크게 보아 같은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영어의 die, decease, pass away, bite the dust, buy the farm, kick the bucket, fatality에 해당하는 이렇게나 많은 말을 다 아는 것도 어렵거니와 어느 말을 어느 때 쓰는 것인지 알게 되려면 상당한 고수의 경지에 이른 후에나 가능하다.


시각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영화 제목 중에 ‘3:10 to Yuma’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유마행 3시 10분발 기차’쯤이 되겠다. 죄인을 호송하여 유마로 가는 3시 10분발 기차에 태워야 하는 호송인과 그 죄인에 관한 영화이다. 기차가 출발하는 시각인 3:10을 외국인에게 가르친다고 해보자. 말로 가르칠 때에는 ‘세 시 십 분’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이것을 종이에 적는다면 대부분 ‘세 시 십 분’이 아니라 ‘3시 10분’이라고 쓸 것이다.


자, 이제 종이에 쓴 ‘3시 10분’을 읽어보자. 누구나 ‘세 시 십 분’이라고 읽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3시’에서 ‘3’은 ‘삼’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므로 ‘삼 시’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3시’의 ‘3’을 ‘세’로 읽으면서 ‘세 시’라고 읽는 것일까? 어찌하여 ‘10분’의 ‘10’은 ‘십’이라고 읽으면서 ‘3시’의 ‘3’은 ‘삼’이 아니라 ‘셋’(여기서는 ‘세’)이라고 읽는 것일까? 아라비아 숫자인 ‘1, 2, 3, 4’는 ‘일, 이, 삼, 사’로 읽는 것이고 ‘하나, 둘, 셋, 넷’으로는 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말,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고, 이렇게 한글로 글도 쓴다. 그 어려운 우리말과 한글을 이 정도로 쓰고 있으니, 까짓 영어 좀 못한들 어떠랴 싶다(고 쓰고 사실은 이렇게 우겨가면서 부족한 영어실력을 가진 자신을 위로한다고 새긴다).


미국에 도착한 한국 여행자가 자동차를 렌트해서 이곳저곳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운전하다가 차 앞으로 사슴이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방향을 급히 바꾸다가 자동차가 길가의 나무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뒤따르던 미국인이 자동차를 세운 후 사고 자동차로 달려가서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한국 여행자에게 말했다. “How are you?” 그러자 그 한국 여행자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 때가 있었다. 누가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네 오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기에 그 한국 여행자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 미국인의 “How are you?”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아니고 “사고를 당했는데 좀 어때요? 괜찮아요?”라는 걱정인데 한국 여행자는 암기했던 대로 “저는 괜찮아요. 고마워요. 당신은 어때요?”라고 대답한 것이다.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고 피해자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얘기는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니고 우정 지어낸 우스갯소리이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잘 표현하고 있고 다른 언어를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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