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불수능이라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좌절했다고 한다. 지인의 딸들은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안타까웠다.
예전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을 생각해본다. 아침 7시부터 등교해서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더 엄격했고, 수험의 무게에 짓눌렸던 3년의 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지친 몸을 이끌며 학교에 다녔다.
돌아보면 학교 생활밖에 기억이 없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때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했던 농구가 다였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세상이 천천히 변하던 시기였다. 삐삐도 보급되기 전이었고, 인터넷은 한참 뒤 이야기였다. PC 통신이라 불리는 신문물이 있던 시대. 그리고 학생들 대부분의 꿈은 천차만별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지원하던 시대였다.
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2~3달 전의 정보가 이제는 벌써 과거의 유물이 되는 느낌이다. AI로 업무를 하다 보니, 그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잡는 것 자체가 힘들다. 우왕좌왕하느라 바쁘다.
이제는 내 머리나 경험으로 뭐든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백업해 놓듯이, 이젠 우리의 뇌가 클라우드에 있다고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다 외울 필요도 없고, 다 우리가 자세하게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필요한 설계를 하면, 그 큰 그림을 따라 AI가 필요한 일을 진행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능을 보고 있다.
수능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학력고사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결국 외우고 또 외우고, 풀고 또 풀고의 연속 아닌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참아내고, 그냥 열심히 한 자만이 통과하는, 그것도 1년에 1번, 통과 의례처럼 있어서 19살이 되었을 때 처음 시험을 보고 거기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 입시라는 지옥이 시작된다.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입시라는 곳에 쏟아붓고 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세상이 더 따뜻해지기는커녕, 더 각박해지는 느낌이다. 오로지 나만의 안위를 위해서 공부를 잘하는 게 최고다.
전국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나열하고, 그걸로 사람을 판단한다. 한 번 들어간 대학교로 평생 가늠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얼마나 눈치 주는 사회인가?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이제는 AI를 사용하는 시대인데, 여전히 암기를 통해서 학생들을 뽑고, 순서대로 아이들의 미래를 정한다. 이렇게 한 번의 시험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부담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세상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일까 싶다.
인생이란 수능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대입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그리고 나서 취업이 있고, 그다음 다른 문제와 단계가 있다.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만, 이건 시스템 자체에서 세상에 대한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식의 소모전은 결국 우리 사회를 좀먹고, 세상을 좀 더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